나도 괴물일까
위대한컴플렉스 2024/11/0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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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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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을 읽기 전에 목차를 살펴보며, 가장 눈에 들어왔던 챕터는 작가가 자신도 괴물인지 질문하는 '9. 나도 괴물일까'와 '10. 자녀를 유기한 엄마들, 도리스 레싱, 조니 미첼'이었다. 나도 엄마이자 창작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늘 엄마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질문을 거듭할 수 밖에 없는데, '아이를 유기한 엄마'는 일단 '괴물'로 분류되는구나 싶어서 아찔했다. 이 책은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예술가들의 '괴물성'에 대하여 다루는데, 우선 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 운동 전까지는 숭배의 대상이었던, '차별과 혐오의 가치관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거나 범죄에 가까운 일을 저지르고도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재능을 인정 받은 남성 예술가들' 에 대한 논란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남성 예술가에 대한 신화 허물기 뿐만 아니라 크게 주목 받지 않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유대인 혐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예술과 예술가의 삶의 분리는 늘 어려운 숙제이다. 예술가들도 물론 자신의 예술과 삶의 불일치와 늘 대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예술가는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gifted' 이고 그 재능의 결과물은 인류의 공동 유산이 되기에 어쩌면 도덕적 기준과 법적 제재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운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신화에서 벗어나 '예술가의 괴물성'에 대한 고민은 '그들에 대한 숭배'에 잠식당했을 때보다 오히려 우리가 더 성숙하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리라 생각된다. 엄격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대해 '분리'가 아닌 '떠안고가기'는 불안하지만, 그 '멜랑콜릭'한 상태가 결국 예술이 존재하는 의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에 대한 '신화 깨기' 사례가 나오지만 저자가 결국 자신의 삶과 감정에 기반하여 이 책을 서술했듯이 나도 최근의 경험과 감정에 충실하여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다시 챕터 9,10으로 돌아가보면 무척 재밌고도 공감가는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여성 예술가들과 작가들은 지금보다 더 괴물처럼 되기를 소망한다. 은근슬쩍 농담조로 말한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돌봄의 의무는 모두 저버리고 예술가로서의 이기적인 의식만을 수행하고 싶다는 뜻이다. [...]
알고보니 그들(남성 작가들)은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지 않았다. 핵심은 그 안에 있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 그 일을 해 줄 아내가 있었다. 그것도 도맡아서 해 줄 사람.
211쪽.
얼마전에 나는 대지미술의 한 갈래인 '개간미술' 작업을 했던 여성 작가들- 아그네스 디네스, 낸시 홀트, 패트리샤 요한슨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대지 미술은 장르 특성상 제작 비용이 많이 요구되어 후원자의 경제적인 지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디네스, 홀트, 요한슨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후원에서 소외되었고, 그나마 어렵게 이루어낸 작업도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하였다. 특히 낸시 홀트가 대지미술의 선구자인 로버트 스미스슨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마음이 더욱 착잡해졌다. 홀트에게도 적극적인 후원자와 모든걸 도맡아서 해 줄 아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편 며칠전 작가 오를랑과 zoom으로 하는 라운드 테이블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여기서 나는 '페미니즘' 토픽을 선택해 오를랑에게 '여성 작가로서 직면한 편견과 재정적 어려움'에 대해 질문했는데, 오를랑도 여성작가로서 남성 작가들에 비해 자본의 지원으로부터 소외 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이 구현하고 싶은 예술을 예산의 한계로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갤러리와 시장도 남성 작가의 작품을 여전히 선호하니, 여성 작가의 작품은 가치가 저평가 되어 여성 작가로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하였다. 오를랑은 더 나아가 남성을 양육하는 여성이라면 남성을 정말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성은 자신과 지구를 위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마치 이 책의 저자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했던 것 만큼이나 공감과 해방감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아내'는 없고, 나는 이미 아이를 낳은 여성이다. 저자는 "여자들은 글을 쓰거나 예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면서 때때로 나쁜 엄마가 된 기분을 느낀다"고 하며, "남자의 범죄가 강간이라면 여자의 범죄는 양육의 실패"라고도 한다. 그리고 자신도 괴물인지 질문하며 자녀를 유기한 여성 예술가들의 사례를 제시한다. 나는 책에 등장하는 '자녀를 유기한 엄마 예술가들'을 보면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확실히 억울한 건 '서재나 작업실의 문을 닫고 아이를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거나, '아이를 조부모나 유모나 베이비시터에게 맡긴다'거나 '한 번에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출장을 간다'거나 '집을 나간다' 등의 행동을 엄마가 하면 자녀를 유기한 것이지만, 남자가 할 경우에는 유기 행위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의 결론은 내가 스스로 '엄마'라는 역할을 선택했기에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어떤 불공평한 상황이라도 마땅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육 실패자'가 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며 느슨한 유기를 하고자 한다. 비난을 감수하면서 나를 위해 (공부, 글쓰기, 집 비우기 등) 필요한 일들은 꼭 해나가는 것이다.
'괴물들'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 책의 저자는 마지막 챕터에서 '끔찍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사랑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영국 철학자 질리언 로즈의 말을 인용한다. "어떤 사랑의 관계에서든 민주주의란 없다. 자비만 있을 뿐이다." 결점투성이의 불완전한 인간인 '괴물들'을 타자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괴물'이 있음을 바라보며, 완전무결함을 기대하고 인간을 바라보는 것을 중단하고, 사랑하기를 제안하는 저자는 신나게 괴물들을 조롱하던 나를 멈칫하게 하였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나는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를 가르듯 '좋은 예술가'와 '나쁜 예술가'를 나누고, 남성과 여성을 대립시켰다. 하지만 괴물들의 명백한 잘못을 결코 '사랑은 불완전함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리고 싶지는 않다. 대신 나는 이 책을 통해 예술가라는 신화를 걷어낸 인간을, 예술 너머의 삶을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괴물들의(나의) 끔찍함을 떠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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