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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컴플렉스님의 서재
  • 격정과 신비
  • 르네 샤르
  • 13,500원 (10%750)
  • 2023-07-25
  • : 1,051
1946년 3월 4일
친애하는 선생님.
<히프노스의 단장들>을 읽고 정말 좋았습니다.


1948년 9월 21일
친애하는 나의 친구,
내 책상 위에는 <분노와 신비>의 홍보물이 놓여 있습니다.
기쁜 마음을 당신에게 전하고, 이 책이 불행한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시집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말하기 위해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당신과 더물어 시는 용기가 되고 자부심이 됩니다. 우리는 마침내 이 시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마음의 숲



<격정과 신비>는 르네 샤르가 1938년에서 1947년 사이에 쓴 시들의 상당 부분을 모아 놓은 시집이다. 이 책은 <유일하게 남은 것들>에서부터 <히프노스 단장>, <당당한 맞수들>, <가루가 된 시>, <이야기하는 샘>으로 이어지는데 산문시, 아포리즘, 이행시, 삼행시, 메모 같은 단장 등 여러가지 형식들의 시가 산재한다. 그의 역동적이면서도 명상 같은 단어와 발상의 향연을 읽어 나가며, 고요한 가운데 섬광이 비치는 듯 했고, 절망과 어둠의 속에서는 작은 기대가 피어 오르는 걸 경험했다. 시인이 격정적으로 내뱉는 싸움과 아픔과 자연의 변덕의 묘사 뒤에는 도시의 거리에 분명히 존재하는 나를 사랑했던 누군가와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멀리서 불빛을 비춰 주었던 누군가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야기하는 샘 - 단심)>과 대지가 끝내 결실을 맺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모든 걸 잃었다 해도 실패에 전혀 동요하지 않음(<당당한 맞수들 - 그들에게 돌려주세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르네 샤르는 실존에 대한 확신과 동시에 불안이 존재하던 시대를 어떻게 계속 걸어나갔을까? 그는 1907부터 1988년까지 20세기를 오롯이 관통하며 살았다. 시인은 알베르 카뮈에게 바치는 <히프노스 단장>에서 '말씀의 질서 안에서 좀 더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하고, '"당면 문제"는 생사의 문제이지 운명의 대양 위에서 흔적도 없이 침몰할 위기에 처한 문명의 내부에서 어떤 작은 차이들을 중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을 강조하는데 이런 태도 때문이었을까. 그는 격정이라는 삶의 폭풍우와 신비라는 삶의 우연성 사이에서 계속 '걸어가는 것'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며, '삶의 비굴을 강요하는 그 두려움을 수긍하지만, 즉각 자신을 도우러 달려올 수많은 단호한 우정들'을 만들어 나가며 삶을 온전히 살아냈다. '손에 잡히는 모든 열쇠를 과감하게 사용하며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실편백 나무 천막 밑에서 철옹성처럼 버티는 시인'의 마음으로.



르네 샤르는 그의 시에서 '발하는', '또다시 사라질', '전기처럼 솟구칠', '잊지 않고 기억할', '아낌없이 기다릴', '사랑이 자라고 있음을'이라는 표현등을 통해 삶과 감정의 역동성을 드러낸다. 그에게 격정은 감정이 아니라 '움직임'이다. 그에게 신비는 신의 계시가 아니라 '움직임이 만들어낸 파장'이다. 그는 '사라져 버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기다리고 꿋꿋하게 믿는다. 포기하지 않는다.(<유일하게 남은 것들 - 들리지 않는다,)> 믿음과 포기하지 않음, 그것 또한 의지를 넘어선 움직임이다. 그렇게 그는 '낙담의 짓누루는 무게 같은 건 전혀 모른다는 듯 미래를 짜 나간'다. "사랑해"라고 바람이 자기가 살게 해 주는 모든 것을 향해 거듭 말하는 것,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 안에 살 수 있는 이유, 바람 처럼 서로를 향해 계속 걸어가며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혹은 바람의 행로에 따라, 바람이 싣고 온 너의 흔적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계속 접촉하는 것을 기대한다.



최근 #neverbendwiththerainfall_march 챌린지를 시작했는데, ‘한 계절의 여름’ 같이 푸르른, 생의 ‘청춘’이라는 단계에 있는 젊음을 응원하고 싶어서였다. 어제는 중학생인 둘째와 친구들을 나주의 한 워터파크에 데려다주면서 순간 내가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마주한 아이들은, 막연히 느끼던 ’지긋지긋한 사춘기에 놓인 중학생‘ 이 아니라 그들 앞에 놓인 생의 가능성과 친구와 함께하는 현재를 오롯이 마주한, 생명 덩어리,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 생기를 실감한 순간 나는 그들을 내 역량이 닿는 한 지켜주고, 지지해 주고, 함께 걸어가고 싶어졌다. 한편 어제의 경험 후 르네 샤르의 시를 다시 마주 하니, 시인도 전쟁을 겪으며,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그런 마음으로 남은 사람들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시를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노화의 단계에 따라 삶의 층위와 가능성의 무게를 나눌 수 있을까. 오로지 살아 있다는 것이 청춘인지 모른다. 매 순간의 움직임이라는 생명의 역동성.



'사랑 하며 걸어 가기',
불안이라는 실존의 격정은 움직임을 감각함으로써, 걸어감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는 것.
사랑의 신비는 바람으로 전달되고 접촉될 수 있다는 것.
그는 우리는 그저 우주적인 힘의 여행에 나서며 연약함과 불안을 자양분으로 삼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여행자들이 기억할 의무가 있음과 동시에 (<유일하게 남은 것 - 원소들>) 한편 정확히 누가 자기를 사랑했고, 자기가 넘어지지 않도록 누가 멀리서 불빛을 비춰주는지를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이야기하는 샘 - 단심>), 말한다. 의지적인 기억과 비의지적인 기억의 총합이 우리 공통의 추억이 될 것이지만 그것이 어떤 기억으로 채워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걸어가는 수 밖에 없다. '우리 눈물 위로 내리는 밤을 고요하게 만들어 주는 저 꽃들의 묵직한 향기' (<히프노스 단장 - 109>)를 실어오는 바람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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