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망상 이후 광막한 광야에서의 추락, 그리고 돌아온 탕아처럼
이 소설은 주인공 주디스 헌이 아일랜드 벨파스트 지역 대학가의 하숙집에 거주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후 이모가 그녀를 데려와 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왔는데, 소설은 이모의 죽음 후부터 보여진다. 그녀는 당시 결혼 적령기의 나이를 넘어선 독신녀이자, 피아노 선생님, 카톨릭 신자, 그리고 알콜 중독자이다. 이 소설에서 술에 대한 묘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큰 편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술 중독자로서의 그녀의 기행의 나열들이 아니라, 그녀의 외로움, 현실의 벽, 열정, 혼란 등이 그 이면에 깔려있는 듯 보인다.
그녀의 생활은 애처롭고 궁핍하다. 뱃속이 너덜거릴 정도로 절식을 해야했다. (결국 오후 세시 무렵에 무너지기는 했지만.) 피아노 선생님인 그녀는 재능이 없는 학생에게마저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친구 부부네 아이들은 그녀가 집에 찾아 오면, “피난 준비 하세요.”를 외치고, 무엇보다 그녀는 하숙집 주인의 오빠이자, 뉴욕에서 온 구원자(?), 제임스 매든이 청혼할거라는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기까지 한다.
나는 그녀의 삶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오즈의 마법사>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도로시에 대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녀가 늘 침대 머리맡에 두는 사진과 그림에 있다. 사진은 그녀가 어릴 때 부모를 잃자 그녀를 돌보아 준 이모의 사진이다. 그리고 그림은 예수의 그림이다. 그녀는 “두 분이 나와 함께 있고, 날 지켜 주고 있다면, 새로운 곳도 집이 되는 거야.”라고 읊조린다. 그 말은 새로운 시작이자, 저주 같은 주문이기도 했다. 이 소설 속에서 ‘집’은 이중적 의미를 가져온다. 그녀가 주체적으로 삶을 시작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녀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족쇄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도로시가 모험을 떠나고 와서 “There’s no place like home” 이라는 것이 언젠가부터 자조적인 체념으로 들리는데, 그 말은 주디스의 집에 대한 독백에도 적용 되는 것 같다. 유일신과 가족이 없는 세계가 그녀의 진정한 장소임을 모른채, 방랑하기 보다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주디스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이모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벨파스트에서 살았다. 그녀는 어느덧 나이가 들어 정신이 온전치 않은 이모를 부양하다가 의사의 조언에 따라 이모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이모는 “난 네가 시설에 갇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널 거뒀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날 정신병원에 가둘 줄은 꿈에도 몰랐지.” 라며 주디스의 결정을 되돌리게 한다. 그 후 주디스는 화를 내고 악을 쓰는 이모를 5년여를 더 돌보아야 했고, 돌아가신 후 장례식을 치르지만, 주디스에게 남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하숙집을 구해, 그곳에서 만난 하숙집 주인의 오빠이자, 뉴욕에서 온, 그녀에게 유일하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 준, 제임스 매든에게 푹 빠져 뉴욕에 가는 꿈을 꾸게 된다. 뉴욕은 그녀의 에메랄드 시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티켓을 준비하는 대신, 마녀의 유혹 처럼 술의 유혹에 자꾸만 빠지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안한 일이 생길때마다 마치 위기에 빠진 도로시가 구두로 발을 굴러 장면 전환을 하듯, 뾰족한 신발의 눈(단추)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그녀는 위기에서 탈출 하지 못하고 끔찍하고 고약한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과 자신에 대한 패배감으로 더욱 술에 빠져든다. 술은 치명적 유혹이자 그녀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사실 그녀는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노래를 했을 뿐 이었는데 그녀를 향한 세상의 잣대는 너무도 엄격했다. 게다가 그녀를 뉴욕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던 남자, 제임스 매든은 오즈의 마법사 처럼 가짜-돈도 많지 않고, 그녀와 결혼할 생각은 더더욱 없는-임이 드러났기에 그녀는 더욱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녀가 술로 인해 고통 받고 주변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키며 일을 벌리지만, 그것이 그녀의 삶에서 생동하는 에너지일 수도 있을 텐데, 그 에너지는 더 나아가지 못했고, 주변의 공감과 지지를 전혀 얻지 못했다. 그녀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감실에 있는 예수님의 성체를 ‘빵 쪼가리’라고도 내뱉을 만큼 자신의 길들여진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친구의 요양원에 무단 침입 하는 소동을 벌이고, 친한 친구 부부 집에 가서 In vino veritas를 핑계 삼아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하고, 술에 취한채 성당을 찾아가 제단을 무너뜨린다. 그녀는 결국 신부님과 수녀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돌아온 탕아처럼 요양원에 안착한다. 그리고 눈같은 작은 단추가 달린 신발과 눈을 마주치자, 익숙한 것들에 안도 한다. 신발은 그녀를 더 멀리 데려가지 못했다. “두 분이 나와 함께 있고, 날 지켜 주고 있다면, 새로운 곳도 집이 되는 거야.” 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은 자족과 체념, 신념과 순응사이에서 질문을 던지게 한다. Mea culpa, Mea máxima culpa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로 귀결되기에는 너무나 억울한, 그녀가 느꼈을 사회적 압력도 너무나 안타깝다.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은 저자 브라이언 무어가 몇번의 미국 출판사로부터 출판을 거절당한 뒤에 영국에서 비로소 출간될 수 있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그 후에 그는 부커상 후보에 여러 번 오를 뿐 아니라 20세기의 위대한 작가로도 칭송 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소설들은 영화로도 제작 되었는데, 특히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은 매기 스미스가 주디스 헌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거의 70여년전 이야기지만, 지금 보기에 그녀의 삶은 오히려 파격적으로 보이고, 한편 그녀 같은 삶을 사는 여성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최근 영화 <소공녀>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녀는 가난했고 집이 없었고, 환대 받지 못했지만, 친절했고, 친구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고, 그 사이엔 술이 있었다. 가진 돈을 다 털어서라도 빵보다 더 사고 싶었던, 주디스의 말에 따르면, “나를 위로해 줄 무언가” 혹은 “이 모든 시련을 좀 더 철학적으로 바라보고 더욱 꼼꼼히 따져 보기 위한, 이성을 거절하는 힘이 있는 각성제”, 위스키 한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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