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도시인들은 농촌생활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굳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연으로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 인간에게 내재된 DNA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물론 '아파트가 어때서'라는 책의 저자인 나는 결코 농촌생활을 동경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얼마 전 코타키나발루 휴양지에서 가족들과 일주일가량 지내며 느낀 점은, 내가 의도적으로 한적한 곳의 매력을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도시는 편리하다. 도시의 편리함을 부정하지 않는 저자는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저작이나 르 코르뷔제, 탄소배출권 통계 등을 통해 도시의 장점을 열거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도시가 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만족감, 그러니까 나만의 야외 공간이라는 사치재 측면에서의 가치 역시 이야기한다.
얼마 전 덴마크 사람과 전라남도의 어느 섬을 같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 덴마크 사람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에 감탄을 연발했다. 이 연속된 산세 너무 이쁘지 않냐고. 저기 저 저수지와 끝없이 펼쳐진 논과 밭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지 않느냐고. 그때 잠시 내가 덴마크에 처음 방문했을 때가 기억났다. 이국적인 풍경의 아름다움 말이다.
덴마크는 가도 가도 산이 없는 평지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지와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나에게는 정말 이국적인 풍경의 아름다움이었다. 반대급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평생 산을 거의 본 적 없는 덴마크인에게 우리나라의 산세는 참으로 아름다울 것이라 여겨진다.
책에서 저자는 공주에 위치한 농막의 경치는 "평범한 배산임수의 농촌마을"이라고 표현하며, 딱히 대단한 장점은 아닌 것처럼 이야기한다. 물론 한라산이 보이는 경치나 동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와 비교해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해 보이는 그 산세 속의 농막은, 누군가에게는 감탄을 연발하는 경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해당 농막을 한 번 방문했는데, 더없이 아늑한 느낌과 아기자기한 농촌마을의 분위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 느껴졌다. 아마도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잘 정돈된 밭과 교량, 그리고 전봇대로부터 그러한 느낌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농막 혹은 전원주택을 꿈꾸는 분들에게는 A to Z 기본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변호사인 저자는 여러 각도에서 농막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법률적인 문제는 물론 토목/건축공학적인 문제까지 실제 경험을 통해 재미있게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더없이 귀중하게 여겨졌던 부분은 동네 사람들과 융화롭게 안착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1억 원이 되지 않은 대지를 구입하기 위해 처음엔 공인중개사를 통해 알아봤다고 한다. 하지만 공인중개사 입장에서 보자면 10억 원 내외의 아파트를 중개하는 것에 비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대지를 굳이 열심히 노력해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직접 발품을 팔아 매매를 했다고 한다. 마을 이장님을 통해 농지를 샀다는 말이다.
사업개발을 위해 다양한 이장님 및 어촌계장님을 만나고 다니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참 괜찮은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농막이라 할지라도 주변 사람들과 융화롭게 지내야 하는데, 이장님은 그러한 측면에서 매우 좋은 스타터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은 생각보다 작은 오해에서부터 파생될 때가 많이 있다. 내가 먼저 잘못은 했지만, 상대방의 지나친 반응 때문에 오히려 잘못을 인정하기 싫을 때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 분쟁은 끝도 없이 커져만 간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온 사람과 평생 농촌에서만 사람온 사람의 상식의 수준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각자 느끼는 한계점(Threshold) 역시 다르다는 말이다.
여기서 이장님의 존재는 참으로 귀중하다. 상대방이 어떤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인지, 농촌 사람들 관점에서 보자면 당신의 행동 어떤 것이 거슬리는 것인지 조언을 해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분쟁의 씨앗이 발생하더라도 이것이 커지지 않도록 중재를 해주시기도 한다.
나 역시 사업개발을 할 때 이러한 부분을 세심하게 챙기려고 노력한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우리가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사업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막이나 전원주택을 만드는 일도 일종의 사업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1억 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일이며, 자칫하면 매몰비용으로 모두 의미 없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물리적으로 잘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이웃과의 갈등이 시작되면 편한 마음으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없는 일이다.
변호사인 저자가 이 책을 낸 이유는 물론 농막 혹은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들에게 가이드를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울러 본인이 몸으로 체득한 경험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행간을 들여다보면 정책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법에 대한 의견도 볼 수 있다.
도농 간의 단절, 혹은 격차 등을 지적하시는 분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도시와 농촌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을까. 현행법은 1973년부터 사치, 낭비적 풍조를 억제하기 위해 별장에 취득세를 기본세율에 더해 중과 기본세율의 4배까지 합산한 세율로 부과하고, 재산세도 과세표준의 4%로 중과세 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2021년 기준 전국 별장 취득 건수는 42건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세컨드하우스에 대한 선호를 사실상 봉쇄하고 있는 별장 규제를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은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규제가 있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며, 개인적으로도 저자의 주장에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이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저자는 몸으로 체득한 바를 바탕으로 개선한 부분을 많이 제안하고 있다. 꼭 농막에 꿈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도농 간의 단절,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은퇴 후 개인적인 사무실을 열고, 출퇴근 시간을 정해서 커피를 따라 마시며 글을 쓰고 연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물론 지인들을 초대하여 와인이나 위스키 시음회도 하고, 소주나 막걸리 제조를 할 생각도 있다. 텃밭에 채소도 가꾸면 건강을 유지하고 식비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무실은 도시보다 교외지역이 더 적합할 것인데, 농막 역시 그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나도 개와 늑대의 시간에 개밥바라기 별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주말엔 여섯 평 농막으로 갑니다, 장한별 저, 도서출판 사이드웨이,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