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날수록 점점 마음이 좁아지는 것을 느낀다. 여유는 없고, 이따금 괴팍하며, 불만만 늘어나고, 나이와 함께 쌓이는 것은 피로밖에 없는 것만 같다.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그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지 못하고 자꾸만 토를 단다. 충만했던 마음이 버석버석 가물어가는 기분이다.
『은혜씨의 포옹』은 가물었던 마음을 채워주는 ‘은혜씨’의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은혜씨의 따뜻한 시선이 글과 그림을 통해 온전히 전달된다. 지난 시간 동안 인상을 찌푸리고 바라봤던 우리 사회, 사람들을 은혜 작가는 포옹을 통해 온기로 감싸안고 있었던 것이다.
방황하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
또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내가,
포옹하고 있습니다.
가장 믿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내게 소리를 치고 화를 내며 나를 떠나갔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에 가면 네 마음이 좀 편해질 줄 알았어. 너는 여전히 앞만 보고 달렸고 미쳐 있었어. 그때 네가 대학교에 들어가면 무언가 달라질까 생각했는데 넌 그대로더라. 네 삶에는 언제 안정기가 찾아오니?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에 들어간 후에는 괜찮아질까?”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앞뒤 살피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경주마처럼 살아왔던 것 같다.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갈급함이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몸이 많이 망가졌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도 상당 부분 받았다.
저는 이미 모든 꿈을 다 이뤘어요.
항상 행복해요.
작가님의 문장에서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가까스로 제대로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왔나? 꿈이라는 건 사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지 않겠는가. 타는 목마름으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삶도 좋지만, 이룬 꿈에 만족감과 평온함을 즐기는 삶도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갈망보다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만족하는 가치의 아름다움이 더 중하다는 걸 은혜 작가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저는 지금 행복하거든요.
다른 발달장애인들도 사람들의 시선에
위축되거나 주눅들지 않고
행복하게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자신감 가지고
열심히 하면서 노력해서 잘하면 돼요.
..
포기하지 말고,
하지만 너무 힘들지 않게, 억지로 하지 말고
저처럼 즐겁게 하면 돼요.
포기하지 말고, 하지만 너무 힘들지 않게. 억지로 하지 말고, 은혜씨처럼 즐겁고 유쾌하게 씩씩하게 내일을 살아가자는 은혜씨의 위로가 있다. 은혜씨가 세상을 향해 건네는 포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