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의대생 시절에 첫 장막극 「플라토노프」(1881년,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를 들고 공연을 부탁하기 위해 유명한 ‘말리 극장’을 찾아갔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한 일화는 지난한 역정의 서막일 뿐이었다.
작가는 「플라토노프」로부터 8년 뒤에 장막극 「이바노프」(1889)를, 그리고 다음 해에 장막극 「숲의 정령」(1890)을 발표했지만, 두 작품의 공연 또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숲의 정령」은 그로부터 7년 뒤에 발표된 「바냐 삼촌」의 원시 판본으로 간주되며, 「이바노프」는 훗날 평자에 따라 「갈매기」보다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 시기에 체호프의 극작술은 아직 그 본령을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체호프는 「숲의 정령」 이후 6년 동안 장막극에 손을 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