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수학여행 중이었는데 친구 중 한 명이 조기 복귀를 했습니다. 불이 나서 친구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거든요. 당시에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말만 건넸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때 느꼈던 난감함은 아직도 아찔합니다. ‘이루의 세상’은 그 기억이 다시 떠올려 줬습니다. 이루 역시 아빠를 갑작스럽게 잃지만, 정작 슬픔조차 실감하지 못한 채 가족들과 함께 일상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돌아온 아빠가 ‘죽살귀신’이라는 독특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듭니다. 핏빛 비가 내리고 아빠 얼굴을 닮은 물고기가 떠다니는 꿈의 세계는 어린 마음속 억눌린 감정이 어떻게 환상이 되어 드러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작품은 무겁기만 한 죽음의 이야기를 아이의 눈높이에서 풀어내어 공감대를 만들어 줍니다. 아빠의 등장이 단순히 위로의 장치로만 그려지지 않고, 이루가 스스로의 감정을 마주하고 꺼내도록 돕는 과정이 인상 깊습니다. “넌 이런 나무가 아니야”라는 말처럼, 억눌린 마음을 드러내야 비로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죽살귀신’이라는 설정은 흔히 접하는 귀신 이야기와는 달리 무겁지 않으면서도 독창적입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 또한 매끄럽고, 환상적 요소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감정의 또 다른 언어로 기능한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이루의 세상’은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실과 그에 따른 혼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길을 비춰 주는 작품입니다. 학창 시절 읽었더라면 친구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