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으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

제8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민항과 함께 우리말과 글이 금지되었던 일제강점기로 들어가 보았다. 《1941, 우리의 비밀과외》의 표지 그림은 1940년대 사진 속 인물을 고스란히 소환한 듯 실감 난다. 그런데 제목 밑에 부제가 독특한 일러스트보다 더 눈에 확 들어온다. '말이 금지된 시대의 시인과 소녀'

우리말과 글이 금지되었던 시절에 시인들은 어떤 날들을 보냈을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시인처럼 자신의 첫 시집을 한글로 출판하고 싶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었을 것 같다. 방황하던 시인은 '윤동주'이고 주인공 '한을순'은 시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순이'를 모티브로 한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고등학생이다. 이 소설은 첫 문장이 스토리 전부를 말해주고 있는듯하다.
p.7. 내 이름은 한을순. 또는 기요하라 준코다.
우리말과 글이 완전히 금지되기 전의 과도기에 시인은 과외 선생님으로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소녀는 황국범생 조소명의 얄미운 행동에 제동을 걸 요량으로 다구치 선생님의 제안을 수락한다. '제10회 동백 문학의 밤'에 시를 출품하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시는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이다. 문학의 밤에서 1등을 하는 사람에게는 일본 내지로의 유학길로 열린다. 하지만 소녀는 유학보다는 친구를 택한다. 출품 전날까지 시를 쓰지 못하고 있는 소명에게 윤동주 시인이 가르쳐 주었던 시작법을 알려주며 도움을 준다.
p.101."지난번에 순이 학생이 이름이 말의 시작이고, 시가 말의 끝이라고 했죠? 그 시작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줄래요?"
많은 에피소드를 지나 드디어 문학의 밤이 밝았다. 멋진 드레스를 입고 참석한 소명과 을순. 황국범생과 불령선인의 시 대결은 누구가 승리하게 될까? 하이쿠라는 형식에 한국인의 감정을 담을 수는 있겠지만 일본 말과 글에 우리 감정을, 정신을 제대로 담을 수는 없을 것 같다. 《1941, 우리의 비밀과외》 중간중간 무심하게 툭하고 튀어나오는 윤동주 시인의 시는 일본 말로 우리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음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p.111.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역사 속 슬픔이나 아픔이 희미해질 수는 있겠지만 역사 자체가 희미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안타까운 결말을 알고 있기에 이야기가 어둡게 느껴지지만 우리말과 글에 대한 시인과 소녀의 사랑이 이야기를 너무나 밝게 비추고 있다.우리말과 글이 어떻게 지켜지고 이어졌는지 알려주는 소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