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책을 볼 때는 손을 씻어야 한다. 마치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한장의 연애편지를 쓰기 전에 치르는 의식처럼 말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요즘은 확실히, 연애편지를 쓰는 일보다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싸이 방명록에 글을 남기거나 블로그에서 아는체 해주는 일이 그 모든 연애편지들을 대신한다. 그렇다해도 우선 손을 씻어야 한다. 그것은 이 책은 그 많은 사라진 연애편지들처럼 우리들이, 우리들의 인류가 잃어버리고 있는 꿈. 희망. 그리고 영혼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손을 씻는 일은 이 책에 대한 순정을 표현하는 아주 작은 표현일 뿐이다.
책을 다 덮고 나면 수세미로 손을 박박 문지르고 싶을만큼 더 오래 손을 씻고 싶어진다. 씻을 수만 있다면 심장도 씻고 싶어진다. 수도꼭지에서 콸콸콸 흐르는 수돗물처럼 가슴에서 콸콸콸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부끄러움의 냇물을 도대체 감당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많은 것들을 가지느라 너무 많은 친구들을 잃어버렸다. 굳이 인류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서부터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발견된다. 늘 소중한 것을 쫓아 살아온 것 같은데 뒤돌아보니 내 마음의 순정의 자리엔 오색찬란한 아이콘들만이 들어앉아 있다. 마치 연애편지 대신 문자메시지가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이대로 늙는다면 아마 나도 대머리가 될 것 같다.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처럼. 정말이지 이 땅이 그렇게 된다면 나 역시도 그러할 거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이러한 뒤늦은 독백은 다름아닌 고백이다. 아주 부끄러운 고백이다.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고백을 하게 된다. 마치 늦은밤 홀로 깨어 천정을 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기도처럼. 그렇게 내밀하고 더할 나위없이 나약한 내 영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풀 한포기 심는 일은 땅에서부터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서부터여야 함을.
우선 많은 어른들이, 그리고 삼심대와 이십대를 넘어선 청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에 묻어나는 한 작가의 영혼의 메시지에 온통 마음이 물들었으면 좋겠다. 하나도 놓치지 말고 빠짐없이 그 모든 것들을 살핀다면, 아마 당신은 울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거울을 통해 우리의 머리카락이 한올한올 빠지는 것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우리의 영혼의 머리카락이 한올한올 빠지는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한 백만배쯤 슬픈 일이다. 책을 보면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말이지 이 책에는 영혼이 들어 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어른들이 콸콸콸 흐르는 수돗물에 씻고 난 손으로, 아직 머리카락이 빠지지도 않는 십대와 이제 새싹처럼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는 그 이전의 모든 아이들에게 이 책을 선사했으면 싶다. 아이들은 분명 어른들보다 이 책에 열광할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만났던 아이들이 모두 그러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