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이제 그 소설은 작가의 손을 떠나 오롯이 독자의 것이 된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이 되어 그들이 처한 배경 속에서 유영하며, 그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
나폴리 4부작은 유달리 나의 유년 삶도 나의 청년기와 결혼 이후 중년기의 삶까지 들여다보게 해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레누의 화자 편에서 들었던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
1부에서는 릴라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서막을 열었고,
4부에서는 릴라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끝내 의문으로 남겼다.
어쩌면 릴라는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겨진 것은 아닐까.
언어든 뭐든 쉽게 다루는 재능을 타고난 릴라와
릴라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노력파가 될 수밖에 없었던 레누는
성격도 대비되는 만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줄곧 비교하고 비교당했다.
확연히 차이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다시 끈끈하게 다가섰다가도 틀어지기를 반복했다.
4부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 레누는 남편을 버리고 니노와 동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레누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릴라를 멀리하고 이제 릴라의 영향을 받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여자를 너무 밝히는 니노의 실체를 알고는 니노를 떠나 릴라의 집과 한 건물 내로 이사하게 되고,
둘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하고 둘 다 딸을 낳으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진다.
결국 레누는 릴라와의 대화에서 자극을 받고 사유의 원천이 되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로 처음 발을 내디딘 것도 작가로서의 성공도 릴라 덕분이었다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다.
릴라가 레누에겐 영감을 주는 뮤즈였듯이,
릴라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유명 인사였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나폴리를 떠났던 레누와 달리 나폴리를 지킨 릴라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자연스럽게 해결방안에 도달하게 만들어주었다.
릴라와 함께 하면 그 알 수 없는 기운에서 사람들은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정작 릴라는 자신의 비범함을 자신의 명성에는 이용하지 않았다.
자신은 자신이길 원치 않았고 아무것도 아닌 무가 되고 싶어 했다.
말년에는 정말 그것을 실현하기라도 하듯이 고향 동네를 떠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 중요한 존재로 남은 채 말이다.
에필로그에서처럼, 릴라와 레누의 영원히 끝내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가 드디어 끝났다.
60여 년에 달하는 서사이다 보니
소설 속에는 이탈리아의 사회상에서부터, 경제, 정치 등 혼란스러웠던 이탈리아의 현대사가 담겨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은 그 시대와 장소라는 환경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인간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인물들의 사랑이 정말 보편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나 복잡한 인물들의 러브라인을 따라기기가 힘들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