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문은 나 자신을, 더 확장해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 출발점이 된다. 질문 없이 수용하기만 하는 삶은 무사안일과 관습의 틀에 갇힌 나약함이 느껴진다.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고 답을 찾는 삶은 발전과 개혁의 성장이 느껴진다. 그래서 질문은 지상의 양식이 되고, 질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문지방이며,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게 해 주는 안내자"(배철현의 "신의 위대한 질문" 중에서)가 된다.
남들이 다 하는 그런 질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새로운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질문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국내에서 노벨상도,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질문이 남들의 답에서 시작하고, 형식적인 모범 답에만 주안을 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시작점에서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책의 제목이 바로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이다.
뇌과학자로 유명한 저자 김대식의 전작 <빅퀘스천>을 읽고 그의 인문학적인 독서와 지식에 놀란 바 있다. <빅퀘스천>은 존재는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일련의 위대한 물음 집으로, 철학, 역사, 문화를 넘나들며 논리적이고 지혜로운 대답을 풀어내고 있다. 이 책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은 이러한 대답을 이끌어내는 질문으로 돌아가 어떻게 질문할지 되묻는 듯하다.
이 책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서 또 한 번 저자의 방대한 독서 목록에 감탄했다. 고전은 물론이거나와 현대 지식인들의 저서들도, 심지어 국내 번역출간되지 않은 책들까지 인용하여 시공간, 경계, 언어를 초월한 독서를 섭렵한 것으로 보였다. 저자의 최첨단 과학자로서의 현대적인 감각은 이런 독서로 가능한 것은 아닐까.
국내 번역 출간되지 않은 책들이 유독 관심이 갔다. 이스라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War in Human Civilization)>가 그중 하나이다. 모든 도구를 총동원해 전쟁이라는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고.. 아자 가트는 이스라엘 특수부대 출신이라니, 그에게 전쟁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간의 조건이었다. 이 책이 다른 수많은 전쟁과 관련한 책들과 근본적으로 격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백과사전이라고 하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루이지 세라피티"의 <코덱스 세라피니아누스>(1981)도, 그동안 알려진 무능한 다리우스 대왕이 아니라 포로가 된 사랑하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제국의 왕관도 포기한 다리우스 대왕의 위대함에 대해 말하는, 프랑스 석학 '피에르 브리앙' 교수의 <알렉산드로스 그늘 아래의 다리우스>도 국내 미출간이다.
대재앙들 중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초지능 인공지능'을 꼽은 옥스포드 철학과 니클라스 보스트룀 교수의 <초지능<Superintelligence)> 도 미출간인데, 니클라스 보스트룀은 기계가 왜 자신이 인간의 명령을 따라야 하느냐고 물을 때 이에 대해 답할 수 없다면 인류의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축복받은 집>의 줌파 라히리, <변신>의 프란츠 카프카, 선조 3부작의 이탈로 칼비노, 중세 전문가 움베르토 에코 같은 익숙한 저자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르튀르 랭보, 사뮈엘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같은 굵직한 저자도 소개하고 있다.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를 권하고 있다. <미메시스>에서는 수많은 디테일을 통해 존재하는 사실을 표현하는 호메로스와, 깊은 해석을 통해 진실을 느끼게 하는 창세기로 대변하는 두 가지 전통을 통해 문학을 해석한다. 비평의 걸작으로 사회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는데, 문학에 관심이 많다보니 읽어보고 싶다.
장 폴 샤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도 읽고 싶은 책이다. 한 인간이 죽고 지옥에 떨어졌는데.. 그 지옥이라는 곳은 바로 난생처음 보는 두 남녀와 함께 갇힌 방안이다. 타자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갇혀 오직 그들의 눈치와 비난만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승도 지옥과 별반 다른 것 없다는 것을 꼬집고 있달까.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미국과 유럽의 과학기술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한다. 공상 과학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도 그 스토리는 독보적 독창적이어서 흥미를 아니 끌 수 없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거대한 컴퓨터 "깊은 생각( Deep Thought)"은 750만 년 만에 계산을 끝내고 대답한다. 질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그러면서 '지구'라 불리는 새로운 컴퓨터를 설계해 주겠다고 한다. 결국 인간의 인생 그 자체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추구하는 계산 과정이 되었다니 발상이 새롭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은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니 말이다.
한 챕터 당 텍스트가 짧은 편이다. 자신의 생각에 현대와 고전을 넘다 드는 사례를 덧붙힌 스토리텔링을 짧은 글 속에 담았다. 간결한 문장에 저자의 의도가 잘 각인되어 있어 반복해서 읽기 좋다. 그런 의미에서 여백이 많은 페이지를 챕터 사이에 넣어 집중력을 떨어뜨린 편집이 아쉬웠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 이 책에서 직접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논지대로 해답 보다 먼저 질문을 찾아야 한다. 소개한 책들과 저자의 논리에 의한 스토리텔링은 질문의 근원에 접근하는데 도움을 준다. 과학과 인문학의 균형을 이룬 저자의 책 읽기를 보더라도 먼저 스스로 소양을 쌓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다음엔 본질을 꿰뚫는 시각과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열정이 질문을 시작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