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런 스윗하고 앙큼상큼한 멋진 언니는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를 읽으면서 몇 번이고 생각했다.
택배가 도착하고, 뽁뽁이 봉투를 뜯어 이 책을 처음 마주하자마자 핳ㅎ-하고 웃어버렸다. 표지 한가득 들어찬 잔망스러운 그림이라니.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체에 조금의 친밀감을 느끼며 '아방’이라는 작가님의 이름을 머리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의 그림이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이 아닌 자주 보는 그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그림 쪽은 적극적으로 기웃기웃하지 않았던 내가 '이 그림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느낀다는 건 그 그림이 은근 유명하다는 뜻이 될 거다. 그리고 뒤늦게 찾아본 작가님의 인스타엔 이미 많은 팬들이 줄을 서있었고, 또 이번에도 나만 몰랐다. 이렇게 매력적인 작가님 다들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지…
<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에는 책의 저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방님이 매주 일요일에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리는 그림 클래스 '아방이와 얼굴들’을 운영하며 있었던 크고 작은 행복했던 에피소드들과 '정석’이라는 단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특별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아방님의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생각, 그가 처음 경력을 쌓기 시작한 시절의 서툴렀던 모습까지 담겨 있어 다양한 각도에서 '아방’이라는 작가를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아방님의 그림을 보면 가장 먼저 '톡톡 튄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모범 답안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입시 미술이나 진지하게 그려나가는 실사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누가 봐도 "이건 내 그림이다!"하고 외치는 것처럼 개성이 뿜어져 나오는 이 그림을 보며, 책을 읽기 전 잠깐 '이걸 그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해보았다.
왠지 쿨할 것 같고, 인생을 재밌게 바라볼 것 같고, 고명도를 가진 사람일 것 같아
나의 상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수강생들에게 작은 재미를 선물하기 위해 무작정 발품을 팔아서라도 함께 그림을 그릴 술집을 찾아내는 모습, 틈틈이 새로운 걸 배우면서 자신의 그림 클래스에 들어와 질문을 늘어놓는 왕초보들의 마음을 이해해나가고 반성하는 모습, 이젠 나이가 들어 겁이 많아졌다면서도 다시 사람들 앞에 서는 모습, 사람의 이름을 잘 외운다며 깜짝 놀랄 만큼 스윗하게 이전 클래스 멤버의 이름을 되새기는 모습. 모두 하나하나 넘치게 멋있었다. 특히 "달리 이룬 것도 없으면서 늘 주인공"으로 살았다던 때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생생한 색채를 간직한 채 나의 마음에 안착했다.
사실 나는 그림 그리는 걸 무서워한다. 멍하니 두서없는 단어를 적어 내려 가는 낙서는 해도 그림을 그리는 일은 거의 없고, 1년에 그림을 몇 번이나 그리는지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그림을 못 그리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멋있는 그림이 아니고 남들은 몇 분이면 그릴걸 몇십 분을 잡고 끙끙댄다. 색도 못 고르고… 결론적으로 어디 내놓기에 너무도 창피해서 그리지 않는달까. 잘 그려야만, 용기가 있어야만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용기가 안 났다. 어디 전시할 것도 아니면서.
근데 <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를 읽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디 가서 연습장이나 패드를 쭉 펴고 그림을 그려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것, 내가 그림을 못 그린다고 욕할 사람은 없다는 것, 꼭 누군가 정해둔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취미활동까지 없는 용기를 쭉쭉 짜내며 부담스럽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맞아 그렇지~"하고 쿨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실들을 반 정도는 마음속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물론 지금 글도 제대로 못쓰고 주변 정리도 못하고 있는 게으른 내가 갑자기 일요일마다 그림 한 장을 슥슥 그려내는 건… 솔직히 지키지 못할 약속이란 걸 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아니더라도,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아주 천천히 하고 싶은 것들을 쌓아 가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파도를 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라는 책 속에 담긴 대놓고 다정하기도 하고, 용감하기도 하고, 사려 깊기도 하고, 무던하기도 한 아방 작가님의 말들에 흠뻑 반해버린 나. 아마 얼마간은 이 작가님의 그림들을 보며 헤실헤실 웃게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