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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zhdk3님의 서재
  •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 14,400원 (10%800)
  • 2022-03-29
  • : 33,963

작년 말, 리커버 도서로 만났던 얀 마텔 작가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 이후, 근 4달 만에 그의 전설적인 작품 <파이 이야기>를 만났다. 어릴 때 학교 도서관에 꼭 꽂혀있었던, 방학 독후감 과제 유인물에 필독 도서로 꼭 적혀있던 바로 그 책! 외압(?)으로 인해 후루룩 앞부분만 훑어본지라 제대로 기억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이름과 이야기 흐름만 익숙할 뿐, 사실상 초면이다.


처음 이 도서를 집어들었을 때 든 걱정이 하나 있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정이라기보단 아쉬운 감정이 더 많이 드는 여정으로 다가왔는데, <파이 이야기>도 내 마음을 지치게 하는 구석이 있진 아닐까? 하는 걱정.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도입부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단 이야기의 중심인 ‘바다 위 여정’ 부분이 언제쯤 나올까 기대하고 기다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파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년 파이는 동물원을 운영하는 가족의 둘째 아들로 다양한 동물들과 종교를 접하며 자란다. 그는 여러 동물들의 삶과 특징, 각 종교의 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접하며 넓은 시선을 갖게 된다. 파이가 어느 정도 자라 소년이 됐을 때 가족들은 사회적 분위기를 타 동물원을 정리하고 캐나다로의 이민을 결정한다. 하지만 파이 가족은 예기치 못한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파이는 홀로 살아남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배에 탄 ‘사람들 중’ 홀로 말이다.


서른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20여 미터의 구명정. 그리고 오랑우탄, 하이에나, 커다란 뱅골 호랑이. 파이를 제외한 동물들은 서로 싸움을 하다 당연하게도 최강자인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만 배에 남게 된다. 태평양 한가운데 떠있는 구명정과 뱅골 호랑이 그리고 나. 파이의 주변에 남겨진 것들을 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이 강하게 떠오른다. 


파이는 도저히 ‘이 호랑이와는 같이 살 수 없다.’며 구명정 끝자락에 뗏목을 만들어 자리를 피한다. 하지만 거리를 두는 것으론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리처드 파커와의 공존을 택하고 절망에 맞선다. 또 다른 생명체가 주는 팽팽한 긴장감은 시간이 지나며 안정감으로 바뀌고 파이는 이제 ‘리처드 파카와 같이 있어서 살았다’고 말한다. 한 생명체가 주는 위안과 희망은 내 예상보다 강력했다. 구명정을 벗어나는 순간 나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존재란 걸 알면서도 이 맹수에게서 희망을 보게 되다니, 신기했다.


이 이야기는 파이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다. 총 7개월에 걸친 아주 긴 바다에서의 표류와 잠깐 머물렀던 섬, 리처드 파커와의 마지막. 그리고 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달게 믿지 못하는 이들(보험사 직원들)과의 인터뷰까지. 절망을 보기보단 믿음과 희망을 보던 소년의 거짓말처럼 환상적이고, 믿기 어려울 만큼 기적적인 표류기가 오래 굳어있던 상상 근육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론 초반부(약 150페이지 정도)를 넘기는 게 어려웠는데, 그 부분을 넘기고 나니 뒷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과 상상의 즐거움이 밀려와 단박에 책을 완독 하는 데 성공했다. 책을 읽는 내내 따가운 태평양의 햇살과 끈적한 바다, 방수포 근처에 삐죽 튀어나온 커다란 호랑이의 앞발을 상상했다.


파이가 전하는 끈질긴 믿음과 희망의 표류기는 흥미롭고 신비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오늘 날짜가 며칠인진 몰라도 매일 같은 시간에 예배를 올리던 그의 신과 삶에 대한 믿음, 생존에 대한 신념이 뭉쳐 만들어낸 기적적인 표류기. 몇 년 뒤 나이를 더 먹고 이 표류기를 읽는다면 또 다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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