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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zhdk3님의 서재
  •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
  • 안윤정
  • 15,750원 (10%870)
  • 2022-03-21
  • : 401



이렇게 말하면 몇 사람이나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흔히 말하는 ‘공주과’다. 사람이 공주란 건 아니고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그 ‘공주’말이다. 흙대신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이 더 익숙하고, 불편한 여행은 선호하지 않으며 벌레가 있는 환경이나 무방비한 상태는 극히 피하고 싶어 하는 그런 까다로운 공주과다.


그래서인지 나는 숲으로 떠난다는 말이 익숙하지 않다. 숲으로 간다면 꼭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숲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기분전환을 하겠다며 펜션으로 떠나면 바비큐 중에 커다란 벌레들을 마주해야 했고 왠지 모르게 집보다 훨씬 더 연약한 물줄기와 눈치게임을 해야 했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더위와 한창 싸움을 한 날도 있었다. 사실 내가 고른 곳들이 대부분 ‘꽝’에 가까운 특이한 케이스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몇 번 재밌는 고생을 하고 나니 ‘여행은 무조건 편한 곳.’, ‘일단은 도시!’를 외치게 되었다.


하지만 어찌된 게 이 팔랑귀는 다른 이의 멋진 경험담엔 아주 쉽게 팔랑인다. 그것도 애정과 정성이 잔뜩 담긴 누군가의 기록이라면 그 효과는 더 엄청나다.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라는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을 딱 설명하자면 이렇다. ‘개안’. 녹색이 눈을 편하게 해주는 색이란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녹색이 가진 힘을 느껴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멍하니 모니터를 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흰색 종이도 아닌 생동감이 느껴지는 녹색으로 가득 찬 종이를 마주하고 있으니 오늘 낮에 혹사시켰던 내 눈에게 작은 보상을 선물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책을 다 보고 후기는 또다시 컴퓨터 앞에서 작성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잠시 녹색과 함께 잘 쉬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와 같은 여행 책들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길래 이렇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걸까?” 궁금해서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쩌다 보니 휴양림 야영장으로 캠핑을 다니다 보니 자연휴양림에 욕심이 생겼고, 숲을 즐기며 주변을 여행하기 시작했다.”는 이 책의 저자 안윤정, 서은석 작가. 이 문장을 읽자마자 생각했다. 이분들은 분명 (좋은 뜻의) 욕심이 많고 무지 부지런한 사람일 거라고 말이다. 여행의 여독을 느끼며 푹 퍼져있어야 할 시간에 여행의 순간들을 정리하는 부지런함이라니.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뭔가 써보겠다며 쓸모없는 한 장짜리 메모를 책상에 가득 쌓아둔 나의 게으름에 한바탕 반성의 시간을 갖고 책을 읽어나갔다.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는 그저 추억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고이 쌓아놓을 수도 있었던 이 가족의 숲의 경험들을 하나하나 다시 다듬고 꿰어낸 소중한 책이다. 이 안에 담긴 시간은 무려 15년이라고 한다. ‘우리 가족의 15년간의 숲 생활’이라니. 넘치게 낭만적이고 멋진 단어다.


그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멋지게 찍어낸 순간들이 아닌 직접  예매 전쟁에 뛰어들어 ’내돈내산’ 캠핑을 즐긴 이 가족의 이야기는 꽤나 소박하고 수수하며 느릿한 느낌이 든다. 숲의 주소와 전화, 예약 방법, 프로그램 같은 간략한 정보와 숲의 특성, 좋았던 부분,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체험들과 주의할 점, 숲 근처에 함께 갈만한 장소들까지. 꼼꼼하게 챙겨 각 챕터마다 정갈하게 눌러 담았다. 마치 갓 주말 여행을 마치고 아직 들떠있는 친구를 통해 듣는 신선한 여행 정보 같은 느낌이랄까. 감성이라며 예쁜 사진, 자신의 셀카 사진만 담아 놓은 그다지 영양가 없는 글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SNS에 해시태그 하나만 검색하더라도 캠핑과 여행에 대한 정보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요즘. 사실 캡처나 저장만 해놓고 다시 꺼내읽는 경우는 많이 없지 않은가. 가끔은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천천히 사진도 보고, 손가락으로 글씨를 따라가며 누군가의 경험과 그들이 주는 팁을 흡수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광이 나지 않은 부들부들한 겉표지마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책 <우리는 숲으로 여행 간다>. 주접 같긴 하지만… 가끔 눈이 침침할 때마다 개안할 겸 꺼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올해는 꼭 혼자 산속으로 템플 스테이를 떠나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더더더~ 떠나고 싶다. 근데 아무리 숲이 좋아졌다 해도 여전히 추운 건 싫으니까… 완연한 봄이 오면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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