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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은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중 1권으로, 일상 미스터리의 여왕 ‘와카타케 나나미’ 작가의 대표작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빌라 사람들 모두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었던 날. 평화롭다 못해 권태롭게 느껴지던 해안가 빌라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뒤늦게 발견된 사건 현장에 남은 건 신분을 알 수 없는 사체뿐. 빈집을 포함해 총 11가구(쓰노다 저택까지)가 모여사는, 이 조용한 목련 빌라에 흉악한 사건이 일어나다니, 빌라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알고 있는 이런저런 소문과 사실들을 조합하며 수군거리기 바쁘다. 얼굴과 지문이 모두 손상된 끔찍한 사체 발견!.. 분명히 이 사건은 잔잔한 일상을 크게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사건의 내용과 정 반대로 무겁지 않은 흐름을 이어간다.
각 인물들이 가진 톡톡 튀는 개성과 사건을 점점 미궁으로 빠트리는 심상찮은 과거사. 은근하게 내비치는 피해자에 대한 불만들. 알리바이가 있지만 믿을 수 없고, 알리바이가 만들어진 배경 또한 믿을 수 없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이 빌라 안에 분명 범인이 있으나 용의자가 너무 많다. 가까운 만큼 마주치는 일도 많았고,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왔기 때문에 주민들은 서로 은근한 관계성을 갖고 있다. 싸우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몰래 빈집을 함께 드나들기도 하면서 쌓아간 관계성은 누구나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의심의 여지를 제공한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빌라에 오게 된 고마지 형사반장과 히토쓰바시 경사는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근처에 남겨진 정황들을 조합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이야기의 중반, 다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인해 실타래가 한 번 더 강하게 엉켜버리지만 이들은 꿋꿋하게 조사를 이어나간다. 이 두 형사의 근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짹짹 떠들어대는 미시마 아야, 마야 두 쌍둥이들과 은근 존재감을 어필하고 싶어 하는 하드보일드 작가 고다이, 탐정 뺨치는 눈썰미를 가진 번역가 쇼코 등 여러 주민들이 늘어놓는 말들은 소설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업 시켜줌과 동시에 작은 단서들을 제공한다. 특히 조금만 정신을 팔면 금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버리는 두 쌍둥이들의 모습이 이 소설의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처음엔 우르르 쏟아지는 인물들 설명에 혼란스러웠지만, 인물들이 가진 각자의 개성이 워낙 강해서 책의 4분의 1 구간쯤에 닿자 빌라의 주민들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수사를 진행하며 한사람 한사람 용의선상에 올리는 글의 흐름 덕분에 빌라의 주민들과 가까워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함께 모여살며 조금씩 곪아갔던 문제들이 터지고 아물며 다시 각자의 일상을 찾아가는 450여 페이지의 여정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다가온다. 사건이 일어난 후 쉼 없이 밝혀지는 평범한 이웃 간의 교류 뒤에 숨어있던 거짓말, 스캔들, 수상한 행적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사람들 다 용의자가 될만한 작자들이네”싶어 모두가 의심스러워지고 한 명 한 명 의심하느라 시간이 남아나질 않는다. 너무 많은 용의자들 가운데 누가 사건의 범인일까.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은 두 개의 살인 사건을 손에 쥐고 가볍지만 냉철한 추리를 이어나간다.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을 보면서 처음 ‘코지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다. ‘코지 미스터리’란 범죄물, 추리물, 미스터리물의 하위 장르로 가볍고 편안한 범죄, 미스터리 물을 뜻한다. 코지 미스터리 또는 소프트 보일드라고 부르기도 하며, 사건과 폭력의 비중보다 가볍고 익살스러운 소재들을 중심으로 이어나가는 장르다. 이 장르의 장점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추리물이라는 점, 느긋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은 ‘코지 미스터리’가 가진 장점을 잘 살린 일상 미스터리, 코지 미스터리 물이다. 무겁고 찜찜하고, 새까만 추리 소설에 지쳤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