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 표정, 손짓, 글씨체 같은 것들을 보다 보면 그 사람의 일부를 느낄 수 있다. 완벽히는 어려워도, 그렇게 쭈욱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결을 가진 생각을 하는지. 아주 조금은 감이 온다.
말투, 표정, 손짓, 글씨체 외에도 그의 성격을 확- 느낄 수 있는 매개체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글’이다. 친한 친구들끼리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면 누가 보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왠지 이건 걔가 보낸 것 같다’는 감이 올 때가 잊지 않나.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가 딱 그런 느낌의 책이다. 이건 딱 읽자마자 느낌이 오는 그의 일기다. 박서련 작가의 일기.
이 책이 그렇다더라-하는 이야기들을 제외하고, 직접 박서련 작가의 작품을 경험해 본 건 <더 셜리 클럽>이 유일하다. 핑크빛의 표지가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그 글들의 원색들이 나에겐 곧 박서련 작가의 색이었다. 그리고 합법적으로 훔쳐본 이 일기 속에서 그가 가진 색에 대한 더욱 진한 확신을 품게 되었다.
덜 부끄럽고, 가장 나 같은 일기들을 하나둘 모아 만든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는 그 어떤 글보다 솔직하다. 물론 출판을 위해 약간의 편집(비속어 편집이라든가..?)을 거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종이 위에 안전하게 자리 잡은 글들 중에서 이 정도면 거의 온전한 본인의 것에 가까운 글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미친 듯 멋있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멋있는 언니 같고, 나와 닮은 것 같으면서도 결이 다르다. 나는 아주 단순한 일기나 아주 거침없는 일기. 둘 중에 하나만 쓸 줄 아는 극단적인 사람이다. 내 공책엔 ‘누굴 만나서 뭘 했고 뭘 먹었다 헤헤’같은 매우 단순한 일기 아니면 ‘내일은, 이번 주는 뫄뫄뫄-’하면서 열정이 넘치는 일기, 끝없이 자책을 하는 일기. 또는 분노가 넘치는 일기. 아무튼 아주 일차원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일기들이 넘친다.
내 일기가 즉 나의 기준이었기에 책 표지에 적힌 ‘일기’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땐, ‘에이.. 일기..? 무슨..’싶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말이다. 근데 그의 일기는 예상외로 재밌었다. 거침없이 내지르면서도 동시에 진중하기도 하다. 나의 하루도 이렇게 덤덤하고 멋지게 완성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새해를 맞이하는 타이밍에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를 만난 건 ‘올해는 나도 일기를 좀 멋지게 써보자’는 새로운 새해 계획을 세우라는 운명이 아닐까?
이 일기는 아주 늦은 밤, 조용히 훔쳐보고 싶게 만드는 마성이 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길게 늘어놓고 있다고, 필름들이 낭비된 걸지도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일기가 나와 닮아 좋았고, 존X 같은 약한 비속어를 넣어가며 맛집을 칭찬하는 모습이 좋았다. 존맛인 음식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달까? 침착한 별종인듯하면서도 꼭 옆에 붙어있고 싶게 만드는 재미있는 사람. 그게 바로 박서련 작가다.
일기의 주인이 가진 한순간에 자신을 무겁게 가라앉히는 진중함과, 거침없이 세상을 누비며 뿜어내는 활기, 친구들과 보내는 평범한 일상 속에 맺힌 유쾌함 같은 것들이 이 일기를 구성하고, 일기는 다시 그를 설명한다.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있고, 언젠가는 기뻐하고 슬퍼하다가도 또 예쁘고 맛있는 음식 한 접시와 함께 이겨내곤 하는 사람이라고.
착각으로 시간을 채우고 있다 싶은 날에도 “이삭 토스트 먹어야지, 내일은.” 같은 다짐 한 번으로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그의 모습이 퍽 멋져 보인다. 나도 내일은 예쁜 마라탕을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