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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말. 정말 연말이 돌아왔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올해의 마지막이.
여느 때처럼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는데, 이때쯤의 시간은 왜 이리 빠르면서 무거운 걸까? 나에게 연말,연초란 후회와 자책이 한 아름 몰려오는 시기다.
나는 나를 아끼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라 365일 중 300일 넘는 시간을 나를 혼내는데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연말이 오면 항상 “난 올해 뭘 하면서 살았지?”하는 후회와 “나의 N살을 버렸다.”는 자책을 반복한다. ‘우주의 작은 먼지’ ‘정말 조구만 존재’ 그게 바로 나인 것 같고, 내 노력은 어디로 공중분해된 건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일정이 끝나면 방바닥에 붙어 지낸지 어언 두 달이 되어간다. 그간 공부와 글에 사용하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누워서라도 ‘이 푹 퍼진 마음을 어떻게 뒤집어봐야 할까’ 나름 고민은 했었다.
예전 같았으면 요상한 자존심을 들고 뻗대며 힐링, 위로가 담긴 도서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내가 잘 지내면 좋겠어요>는 조금 달랐다. ‘우주의 작은 먼지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 이 한줄이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는 우주먼지인 나를 착-하고 빨아들였다.
누구에게나 정체와 슬럼프는 찾아온다. 나는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보이지 않아 내가 미워질 때, 나와 비슷한 선에 서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홀로 저 멀리 나아간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발목 잡힐 때.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너무 하찮고 싫어질 때가 살면서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별거 아니라고, 어른이 되면 그런 거라고, 모두가 겪는 일이니 의연하게 넘겨야 한다고. 나를 위로하기보단 괜찮은 척 모르는척해 본 순간이 있다면 <내가 잘 지내면 좋겠어요>를 읽으며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길 추천한다.
긍정적으로 자신을 감싸기보단 그저 영혼 없이 버티게만 만들었던 무거운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 책을 읽었다. 에린남 작가가 풀어둔 산뜻하고 경쾌한 글들을 보며 난 아주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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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지내면 좋겠어요>는 내 인생의 중심인 ‘나’를 아끼는 작은 다짐들로 가득하다. 주변을 쫓기보단 내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욕심을 비우며 온전히 내가 원하는 행복을 찾아가는 에린남 작가의 소소하고 사랑스러운 하루 기록들을 읽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야기 중간에 껴있는 작고 소중한 네 컷 만화와 소탈한 위로들이 마음을 가볍고 뽀송하게 말려주는 느낌이다.
‘나는 왜 이러지? 왜 해도 안되는 거지?’라는 의문보단 ‘이것도 나야. 내 시간과 노력은 헛된 게 아니야’ 같은 위로로 내 마음을 다시 보듬어보자. <내가 잘 지내면 좋겠어요>에 담긴 에린남 작가의 긍정적인 말들을 하나씩 주워 담으며, 실망 앞에서 나를 탓하기보단 위로하며 넘어갈 수 있는 위로의 예시 하나를 챙겨본다.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올 때마다 “이게 뭐 별일인가? 나 이것도 못 버틸 만큼 약한 사람 아닌데”라며 무시하는 사이 작은 상처는 무한히 반복됐고, 자연히 내 시선은 삐딱하게 변해갔다. 나를 위로하고 괜찮다고 말하는 건 오만이라 생각했고 나는 가장 못난 우주 먼지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과 비슷한 나의 순간들을 곰곰이 모아놓고 보니, 어쩌면 나도 나름 노력하고 있는 소중한 먼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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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완벽해지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일상을 지키는 것, 가끔은 기대하면서 내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는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음을 기약해보는 것. 이러한 긍정적인 마음들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영 감이 오지 않는다면, 아주 소소하고 귀여운 이 책을 읽어보시라. 가벼운 마음과 약간의 시간만 있으면 된다.
나를 위한 위스키 한 잔의 이름을 기억하고, 내가 가진 색다르고 작은 감각들을 사랑하자. 소홀히 했던 일상을 챙겨가자, 무엇보다 내가 잘 지내기를 바라며 나를 사랑하는 하루를 보내자. 나를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사실 좋은 책과 영화를 보며 위로받고 다짐하는 것도 며칠이면 끝나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이런 글들을 읽으며 나를 사랑하고 숨통을 틔워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의 위로에 기대지 않고, 나를 아끼고 보듬는 법을 배워간다면, 조금씩 시선을 바꿔간다면 언젠가는 나를 진정으로 아끼는 방법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