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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령님의 서재
  • 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 조남주 외
  • 12,600원 (10%700)
  • 2017-11-15
  • : 12,099

2018년은 'metoo'의 행렬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불거진 사회적인 이슈들은 여성 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다양한 <페미니즘> 책과 강연들은 우리와 근접거리로 다가왔다. 작년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이 던진 사회적 문제 의식은 조금은 성숙해진 페미니즘 운동의 한 분야를 장식하고 있다. 실제 대통령에게 전달된 책이라는 화제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책이 되었고 그 책이 던지는 진지한 질문은 우리가 올바른 젠더의식을 가지기 위한 시발점이 되었다.
-물론 <82년생 김지영>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합니다.><나쁜페미니스트>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나요?><남자들은 나를 가르치려한다> 등의 저작을 통한 시각의 수정은 , 사회적 담론의 깊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지만, 우리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의 경구가 어느 개업하는 식당에 성공염원으로만 걸리지 않기를 바라게 한다.
<현남오빠에게는>는 총 7명의 작가들이 모여 다양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표제작인 <현남오빠에게> 는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 이후 작품은 다양한 작품 활동과 여성 작가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들이 보였다. 최은영, 김이설, 최종화, 손보미,구병모, 김성중
이책을 두고 읽기로 한 중에 검사의 성추행 피해 고백으로 시작된 'metoo'운동은 -물론 물건너 미국 헐리우드의 성추행 사건의 고백으로 시작한 -이제까지 없었던 고무적인 일이기도 하다.
<현남오빠에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으며,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일상성이 주는 잔혹감과 미처 채 깨닫지 못한 현실의 공포감을 안겨준다. 슬프기만 하다기 보다는 나조차 젠더의식의 미약한 뿌리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단편모임집이다.
이책을 읽으면 ' 새삼 '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만-문제 의식이 새롭지 않다는 뜻이다.-그렇다고 아직도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이기심,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의 이기심은 자신의 위치,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위치에서 파생된 역할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인간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내가 얼마나 인간적일 수 있느가를 묻는 김이설 작가의 <경년更年> 이라는 작품은 중년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여성을 바라보는 자신의 정체성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작품이다.

당연히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니까, 학교에선 공부하고 , 어린건 아직 어리니까. 집안일은 집에 있는 나의 몫이라고 생각핬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식구를 위해 소비하는 나의 시간이 나의 가치라고 믿고 살았지만 소용없었다. 해도 표도 안나고, 안하면 더 표 나는게 집안 일이었다. 회사는 월급이라도 주고, 아리들은 성적표라도 받아오지. 나는 ? (p.81)-<경년 >중

김이설 작가는 경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한 여성의 바꾸니 삶을 조망한다. 아들의 입장일 수 밖에 없지만 아들과 남편을 바라보는 그들속에서 자신의 젠더를 회복하는 엄마인 나.  아들의 엄마였기 때문에 딸들을 잊는 모습에 피곤을 느끼는 것이 가혹하기도 하지만 , 그들이 늘어갈수록 희망인 있을 것이다.

나와 진아가 아주 다르게 살아가는 건 그저 아주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통념에 따라가지 않은 진아의 선택만 옳은 것이 아니듯, 내가 의심없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것은 미숙하고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통념에 의문을 품지 않고 기혼 여성이 된 것을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진아의 삶을 흠모하고 싶지 않았다. (p.116)네가 여자여서, 세상의 온갖 부당함과 불편함을 이제 어린 너와도 나워 갖게 된 것이 서글프기 때문이라는 걸 말할 수는 없었다.(p.119)-<경년> 중

김이설 작가의 <경년> 는 내 나이 또래의 누구나 경험하는 이야기를 섬뜩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아는 이야기로 두얼굴인 우리를 만나게 한다.
조남주 작가의 < 현남오빠에게>는 자신의 뜻대로 여성의 삶을 가두고 재단한 현남오빠로 구체화되는 세계와 일별을 고하는 작품이다. 이상하게 초등학교 선생님의 무슨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여자는 세명의 남자를 섬긴다. 아버지, 남편, 아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폭력과 불의에 복종하라는 의미와 진배없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는 그말을 무슨 격언처럼 새겼던건지 모른다.
도대체 섬길 대상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품은 것은 한함 오랜뒤였다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세뇌는 나를 나로서가 아닌 누군가의 00,누군가의00으로 위치매김하는데도 거부감이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남오빠에게>나는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청혼은 거절합니다. 저는 더 이상 '강현남의 여자'로 살지 않을거예요. 오빠는 그럴듯한 프로포즈가 없어서 제가 망설이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중략)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고 너랑 결혼하기 싫은 겁니다.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가 나오고 나서야 꺼림칙햇던 모든것이 분명해졌어.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왔던 것,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엇던 것.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엇더라. (중략)_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앗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p.38)-<현남오빠에게 > 중

통쾌함을 날린다. 그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수많은 그녀를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쇼코의 미소>를 통해 등단한 최은영 작가의 단편< 당신의 평화> 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절 우스개 소리 "시어머니가 며느리 한테 딸처럼 살자고 하고 딸처럼 행동하면 친정에서 잘못배웠다"라고 말하는 현실을 옮겨놓은 것 같다. 최은영 작가는 며느리 선영보다는 정순ㅇ이 며느리로서의 고단한 삶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맏딸 유진, 정순의 관계를 배치하여 남성적인 사회에서 일상에서 무너지는 여성연대의 비극성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미친놈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것을 떠들고 다녓을까?
역사적으로 폭력적이고 육식적인 남성의 세계에서 여성의 연대는 늘 존재해왔고 , 실제 현존하는 여러 부족 사이에서도 발견되었다.
정순이 자신의 시집살이를 선영을 통해 되풀이하려는 피해의식을 유진은 끊을 수 없는 굴레로 생각한다. 유진의 아버지와 준호의 남성적 시각의 차이는 여성인 정순을 더욱더 패배감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정순이 진정 '평화'를 얻는 것은 시집살이의 되물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찾는 것이라는 유진의 말은 우리모두에게 고부갈등이라는 명절의 희안한 기삿거리를 일거에 날릴 수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가 말햇던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무슨 의미엿을까.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 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그가' 현명함' 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때마다 유진은 거부감을 느꼈다. (p.51)그집에서 유진의 미래는 그와 그의 식구들에 의해 다르게 설계되었다. 대학 교육을 받고, 여성학 수업을 들었으면서도 유진은 어쩐지 그의 식구들 앞에서 그의 식구들이 보기 좋은 모습으로 행동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와의 갈등을 피하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그런 태도를 취했던 걸까. '자기 여자' 데려가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햇던 그의 욕구를 ㅇ진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잇었다 우진이 애해할 수 없고 차마 돌아보기 싫엇던 사람은 그때의 유진 자신이었다. (p.61)-<당신의 평화> 중

"딸가진 집이 죄인"이라는 말은 우리 부모님도 늘 하던 말이었는데,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우리를 키우셨던 부모님이 '왜' 죄인인지 의문은 들면서도 나도 거기에 맞춰 살았던 것 같다. 오랫동안 나도 타자를 통해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나의 존재를 증명받으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유진이 선영을 자기 식으로 바라보는 정순과 거기를 두려는 이유도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전승되는 여성의 삶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열망인지도 모른다.

그 거리는 유진에게 어떤 안타까움을, 그리고 자유를 줬지만 언젠가 그만큼의 슬픔을 줄것이었다. 유진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떤 사랑도, 어떤 후회도 그 슬픔을 갚아 줄수 없다는 사실도, 그러나 이 순간 유진은 최선을 다해 이 익숙한 반복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을 뿐이었다. 혼자가 되고 싶을뿐이었다. (p.73) -<당신의 평화 >중

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는 우주개발의 희생물이 된 라이카(역사속의 개다) 와 화성으로 보내진 클론의 이야기이다. sf소설을 읽는 것같은 작품을 통해 클론과 라이카, 부서진 로봇을 통해 새롭게 복원된 모성 사회를 꿈꾸게 한다.
구병모 작가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을 통해 여성의 잔혹한 수난사를 비유한다.  하르피아이는 실제 여성 수학자로 잔인한 고문을 받고 살해당했다고 하는 데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는 작가의 말은 역사속를 돌아보게 한다. '마녀 사냥'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남자인 마법사는 존경을 받지 않앗던가.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남성을 단죄하는 대회는 반대로 잔혹하게 여성을 난도질하는 현실의 재연일 것이다.

고작 그정도 연관짓기엔 억측이엇으며 표본또한 충분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ㅇ르 맴도는 단신 속의 말들...딸 같아서.... 평소 가족 대하듯이...오해가 잇는 듯....모함에 불과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했다면 성의껏 사과하를 전하며.... 그말들은 한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써써던 수마노은 우아한 말들과 맥락도 내용도 조금씩 다르나 본질적으로 유사한 의도를 품고 있었다... (p.231)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중

세상에 완벽한 예견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의 말처럼 오랜 관행이라 우리는 익숙하게 아는 것일까 .현재의 수많은 미투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들이 하는 말들 아닌가. 이런 말들이 너무나 익숙한 것에 공포감을 느낀다.

네소스의 함정에 빠진 헤라클레스, 아폴론과의 내기에서 패배한 마르시아스, 에루리디케를 영원히 잃고 여인들의 원한을 산 오르페우스, 도래할 새봄의 파종을 위해 제몸을 바치는 디오니소스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살가죽이 벗겨지거나 육신이 찢겨진 허구의 이야기 속 남자들은 하고많았으나 , 이 순간 어둠속으로 추락하는 표의 의식에 떠오른 것은 머리카락과 옷을 빼앗기고 귤껍데기와 사금파리로 살이 도려내어져 살해당한 수학자 히파티아, 실존했던 그녀였다 (p.240)-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나는 죽음으로 비로서 나를 완성한다'를 로망 가리의 말은 나에게 오랫동안 남았다.
여성으로 사는 삶을 계획한 적도 없지만 나는 여성으로 산다.
엄마로서의 삶을 나의 엄마를 통해 미리 봤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역할로는 더더욱 살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갈곳을 몰라 할때도 많다.
이 일곱편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여성이기 이전에 자유로운 인간이기를 꿈꾼다.
여성학자 이민경은 
" 이 일곱편의 이야기들은 바로 거기서부터 이어진다. 컸던 혼란과 두려움보다는 작은 혼란과 두려움을 낳은 데로부터,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의심하는데 지쳐 세상과 자신 중에 틀린 쪽이 자신이라고 생각할 뻔한 어떤 여성을 구해줄 것이다. 그 여성은 홀로 품고 잇던 마음이 호라자로 태연히 찍힌 것을 보고 자신에 대한 불신을 조금 거두어 볼 것이다. 이미 자신은 틀렷다는 마음을 먹은지 오래인 여성의 마음마저도 조금 돌려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므로 이어 쓰고
거꾸로 쓰고
새로 쓰고
다시 쓴다면
아직은 낯설은 글들이 쌓이고 다져져 새로운 땅을 만들어 줄 것이다. "
고 이책을 소개한다
세상 어떤 누군가도 자신의 삶이 부정도지 않기를 ,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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