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문학관을 즐겨봤었다. 읽는 것만큼 보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오랜시간 동안 TV문학관과 베스트셀러 극장을 즐겨보았다 .그러나 학창 시절 이후 한국근현대문학을 즐겨 접하지는 않았다. 일본 문학을 읽는 만큼도 안 읽었다고 이제와서야 고백해본다. 숭례문학당의 단편읽기 시즌 2에서 읽은 마지막 책은 최인호의 <타인의 방> 단편집 중 '술꾼'이다.
고등학교 2 학년때 등단하여, 어느날 누나집에서 배를 깔고 두시간만에 써내려갔다는 <술꾼> 은 도저히 두시간의 감성으로는 읽을 수가 없다. 가히 그를 천재라 하지 않으면 ,누구를 칭할 수 있을까
신들린 듯이 써내려간듯한 술꾼에서는 소년과 술꾼들,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가 나온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아버지를 찾는 소년은 결국 그것이 허상임을 되풀이는 되는 상처임을 직시할 뿐이다. 죽은 육친을 그것이 죽음인지. 페스트의 랑베르가 겪은 생이별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소년이 세상에 홀로 남았음을 그것이 전쟁이라는 상흔의 결과임을 누구나 알수 있다.
'잊지마세요' 결국 스스로 다짐하는 아버지를 찾겟다는 다부진 ,그러나 그 시절의 상처를 누구나 알기에 더욱더 슬프고 참을 수 없는 애잔함에 몸소리 쳐진다.
"아주머니, 나술 ,술 마시러 왔어요 " "정말이지 취하고 싶어요" (P.107)
" 잊지 마세요. 우리 아버지 이름말이야요. 국.승.현 나중에 혹 술집에서 만나더라두 내가 술먹더란 말 하디 마세요. 정말이야요." (P.97)
술꾼들은 이제 너무 취해서 한사람 한사람 집을 저주하고,마누랄 저주하고, 맏아들을 둘째아들을 저주하고, 생활을,미래에 대한 희망을, 원수놈의 월급을, 도대체가 살아간ㄴ 그 자체를 ,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P.97)
한잔의 술이 그를 자유롭게 했다. 헤어질때 들이켜는 마지막 술처럼 그 한잔의 새로운 술은 그를 기쁘게 했다. (P.102)
언덕 아래에서 차가운 먼지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사냥개처럼 그 냄새를 맡으며 이를 악물고,내일은 틀림없이 아버지를 찾을 수 잇을거라고 단정했다. (P.109)
아픔도 없이 날재죽지가 양 옆구리에서 부터 돋아나와 자기를 새처럼 가볍게 하리라는 것도 알고 잇었다. (P.106)
" 우리 아바진 술만 먹으믄 울엇시오. 기리티만 난 보다시피 울딘 않아요".(P.108)
그는 자기가 갈곳이 어딘가를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취해도 그는 자기의 노정을 잊어버린적이 없었다. (P.105)
.“아주마니. 나 술, 술 마시러 왔시요.”
그는 자기 말을 믿어달라는 듯 애원하는 시선을 보냈다.
“……이애가 미쳤나?”
“딱 두 잔만 먹갔시요. 돈두 있시요.”
아이는 여인 앞에 지폐 두 장을 내보였다.
“정말이지 취하고 싶어요. 내 주량은 내가 잘 알고 있시요. 두 잔만, 딱 두 잔 더 먹으믄 꿈도 없이 잘 잘 수 있갔시요. 지금 이 정도에서 그치면 안 먹은 것보담 더 못하구, 잠두 잘 오딜 않으니끼니.”
아이는 민물고기처럼 웃었다. 주방의 불빛이 쓸쓸히 한 줌 그의 얼굴에 비끼고 있었다. (P.107)
그때였다. 갑자기 사내가 잠에서 깨어난 듯 흠칫하며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나이프가 아이의 목을 겨누었다. 아이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내의 눈이 병적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말린 입술 아래로는 흰 웃음이 무기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요 술주정뱅이 꼬마 자식아.”
사내는 짖었다.
“내 널 편하게 죽여주마.”
아이는 무어라고 항거하려 했으나 혀를 놀리는 것이 쓸데없는 짓임을 알았다.
“꼼짝 마라, 이 꼬마야.”
그의 왼손 안에서 번쩍이는 나이프는 그 아이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아이는 목 근처에 가벼운 통증이 오는 것을 느끼었고 그는 안이한 생명의 탄식소리를 들었다.
(망할 놈의 목이다.)
사내의 손이 출발을 알리는 체육교사의 그것처럼 잔뜩 추켜졌다. 그의 손아귀에서 칼날은 작은 새처럼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그 칼은 순간 허공을 그어 내렸다. 아이는 공기와 마찰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부싯돌을 긋는 것 같은 찰나적인 섬광이 그의 손에서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사내의 손이 제 가슴을 찌르고 탁자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총알처럼 술집에서 퉁겨져 나왔다.
(바보 같은 자식이다.)(P.104)
도대체 나를 흔드는 슬픔은 무엇일까 아버지를 찾는 끈을 놓치 못하는 소년의 모습이 ,아이가 아버지를 찾는 것이 결국 그의 삶의 끈임을 서글프게 알아가는 것이 몸서리치게 슬프다.
술꾼들이 소년의 말에 대꾸하는 모습은 그 모습이 하루 이틀이 아님을 되풀이 되는 삶의 비장함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술꾼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부모를 찾아 헤매는 소년을 대한다. 자기 혐오와 경멸,그리고 어린소년에게 술을 먹이면서 위로아닌 위로를 건넬 수 있을 뿐이다. 소년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참혹할지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그의 하루가 지났을 뿐 되풀이 될 또 다른 하루가 올것을 예견하게 한다. 소년이 울지 않고 되풀이되는 속에서 스스로 위로를 찾는 것은 아이러니하고 전쟁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이 아이들임을 드러내지만 ,아이들로 인해 새로운 시대의 하루의 희망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박기범의 문제아를 읽을대처럼 극 사실주의 문학은 나를 오열하게 하지만 , 그러나 그 사실적인 현실 고발은 우리에게 또다른 희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