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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가장 위대한 소설가‘ 라는 찬사를 받는 영국작가 이언 매큐언. 1975년 < 첫 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등단하였고 동시에 이책으로 ‘서머싯 몸‘상을 수상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칠드런 액트‘를 포함하여 많은 작품들이 차례대로 영화화되었으며, 이 책 <첫 사랑 마지막 의식>또한 수록작품 세편이 영화화되었다. 희곡과 방송극본, 오페라까지 이언 매큐언은 한계없는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첫 사랑 마지막 의식>은 그의 초기작이면서 가장 실험적이며 도덕적 파괴를 결연히 보여준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수록작 8편은 실제 기묘하면서 잔혹한 도덕적 판단조차 할 시간없이 독자를 범죄의 공범자로 만들어 버린다. 독자는 아내를 사리지게 하는 ‘ 입체기하학‘ , ‘여동생을 강간하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가정 처방‘ 놀림당하고, 부모가 없고, 버림받은 세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게 하는 ‘여름의 마지막 날‘ .극장에서 ‘세 엑스를 하지‘라면서 극을 준비하지만 실제 관계를 맺는 코커씨를 발견하는 ‘울 것 같은 , 정말 울어 버릴 듯한 날들˝속에서도 울지 못하는 ‘ 극장의 코커씨‘. 어린 여자 아이를 강간하고 죽여버리는 ‘나비‘ 속 범인을 알지만 무력할 뿐이다.

‘벽장 속 남자의 대화‘처럼 ˝내가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 (p.140) 작가는 목격하게 한다. ‘첫 사랑 마지막 의식‘에서는 동거녀인 시셀과 그의 어린 동생, 그리고 벽을 긁어대는 존재와 장어, 노동자의 분홍색 의상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 그들의 행동이 외로움, 무료함, 호기심, 두려움에서 기인하고, 또 그러한 감정은 통제할 수 없는 무의식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들어 올 때 문을 열어주는 어떤 조그만 남자 애에 불과했다˝(p.205) 이언 매큐언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래서 완전한 성인이 되지 못한 채로 도태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도태는‘ 나비‘에서 등장하는 도시의 모습이 ˝운하를 끼고 능어선 공장 뒤편은 대부분 창문이 없고 을씨년스럽˝게 그려지는 것처럼, 그들의 심리적 박탁, 일반적 입장에서의 범죄 행위은 개인의 삶의 파괴로 끝나지만, 그 밑바닥에는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지 않는다.

영화화 되었던 ‘입체기하학‘은 증조부가 남긴 일기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하던 ‘내‘가 비밀을 풀고 ˝지친 심신을 일으켜 세울 기발한 생각˝(p.29)으로 아내를 사라지게 한다. 아내가 강가에거 본 ‘주황색 나비 두 마리‘는 단편 ‘나비‘에서 여자아이 ‘제인‘을 꾀기 위한 소재이기도 하다. 작품 속 ‘나비‘는 번데기라는 흉칙한 변태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비가 되지 못한다. 이언 매큐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은 작가의 말처럼 변태과정을 겪는 중이지만 그 과정의 고요함을 즐길 새도 없이 무언가에 노출되어 무력해진-즉 나비가 되지 못하는- 번데기인 래로 탈락한 자들이다. ‘가정 처방‘속의 나는 ˝ 삼촌들과 연일 초과 근무에 시달리는 불쌍한 우리 아버지, 그밖에 내가 알고 있는 친척 누구보다 부자였다. 제분소에서 열두 시간 작업을 마친 창백하고 언짢은 얼굴로 저녁에 귀가하는 아버지˝(p.44)를 생각하면 코웃음을 웃는다. 왜냐하면 ˝매일 저녁 더 늙고 피곤하고 가난해져서 집에 가는 수많은 사람들˝(p.44)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갓 의미없는 자신의 왜소한 운명을 가늠하며 저린 발을 서시히 젖은 풀밭으로 내딛는 인간, 숨 막히는 거대 도시의 하늘 아래, 인간의 도전욕과 유기체의 진화 과정을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의지를 시연하듯, 광장 저편에서 아메바 덩어리 같은 것이 나타나 점차 사람의 옷을 입으며 도전욕과 결승점을 통과하려는 헛된 노력으로 무장한 채 비틀거리며 뛰어왔다. 그건 순간순간 새롭게 얼굴을 바꾸는 삶, 바로 우리 삶 그 자체였다. ˝(p.48)

‘나비‘에서는 ˝내가 용의자로 찍할 만한 인상‘을 가진 ‘나‘가 존재한다. ˝목과 턱이 구별 안되는 내 얼굴을 사람들에게 불신감을 준다˝ (p.101) ‘나비‘속의 나는 그레서 나비가 되지 못한다. 나를 따라왔던 소녀는 죽음으로 나비가 되지 못한다. 이언 매큐언은 나비를 통해 사회에서 도태된 나의 은밀한 욕망과 쓰레기장, 운하, 막다른 골목 터널로 그려지는 도시의 뒷골목의 추악함을 드러낸다. 그래서 찾고 싶어도 나비는 찾을 수 없다.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작가는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못할 판타지를 타인을 통해 실채화하려는 인간군상의 억압을 드러낸다. 그 억압은 종속적 관계이자 폭력적 관계로 다시 생산된다. <첫 사랑 마지막 의식>의 작품 들 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모습은 ‘여름의 마지막 이야기‘의 제니가 실수로 앨리스를 쳐서 넘어 뜨리고 그때 보트가 뒤집히는 것처럼 , 하나의 균열은 다른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그 이야기의 끝은 결국 ˝ 제니가 보트 가장 자리에 기대 쓰러지면서 보트가 뒤집힌다˝(p.85)

가장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는 이언 매큐언이지만, 작품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단지 소재의 음란함과 직접적인 성의 묘사만으로 한정해서 본다면 그 작품 속의 상징과 이미지, 자본주의사회에서 도태된 인간의 쇠락한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는 것과 동일한 부채감으로 다가온다. 이언 매큐언이 추구하는 작품 안에는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모습에 더욱더 주목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들 삶의 한가운데서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언 매큐언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가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 마이클 뮤쇼는 이언 매큐언의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 대해 ˝어둡고 잔인해 보였던 것들이 페이지를 넘김에 따라 마음에 사무치고 호소력 강한 이야기로 변신한다. 음란한 요소는 극도로 감정을 절제한 이야기 구조와 정직한 묘사 속에 희석되고, 센세이셔널리즘의 여지는 완성도 높은 스타일로 인해 전소된다.˝는 이야기처럼,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인간의 감춰진 얼굴을 드러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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