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침묵은 당신의 선택이다. -
<소년이로>는 장면 소설 <홀>로 2017년 셜리 잭슨상을 받으며 한국적 서스펜스의 성취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편헤영 작가의 단편집이다. 작품집안에는 《뉴요커THE NEW YORKER》에 게재된 《식물 애호》와 현대문학상 수상작 《소년이로少年易老》를 담았다. 총 8편의 각가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하나의 관통하는 주제를 통해, 작품들의 면면을 들여다 본다. 작가는 "이 책에 우리들의 실패라는 제목을 붙어 두었다.우연에 미숙하고, 두려워서 모른 척하거나 오직 잃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 바 있다.
표제작 '소년이로'는 주자의 문집에 수록된 시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의 앞부분을 따온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두려운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일과 어쩌면 일어낫을지도 모르는 일까지" 감당해야 하는 유진과 소진의 이야기라면, '우리가 나란히'는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해 자신의 몸을 기어오르는 개미를 잡기 위해 옷을 벗는 나와 알콜 중독자가 친구의 이야기다. 장편소설 '홀'의 근거로 볼 수 있는 '식물애호'는 한순간의 사고로 무너진 오기의 삶을 서늘한 서스펜스로 그려내고 있다. '원더박스' '개의 밤' '잔디' '월요일의 한담' '다음 손님' 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종속된 삶의 무게가 던지는 무력함으로 전달된다. 작가는 "스스로의 환멸 때문에 "(p.129) 소영이 미뤄두었던 질문 " 그러니까 이것이 모두 누구의 잘못이냐고" (p.129) 항변하고 싶은 인간군상을 우리 앞에 그려낸다. 편헤영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그들이 가해자와 적어도 비슷한 , 아니면 가까운 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또 다시 알수 없는 방식으로 인생에 속아 넘어갔다는 기분이 들었고 이것이야말로 누구의 잘못인가 하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 (p.131) 우연치 않은 사고를 당해 피해자가 된 수만이 있고 그를 바라보는 소영의 모습은 '잔디'에서는 가해자이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대신 " 그럴바에야 비굴하게 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p.185)인 남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런던의 한 뮤지엄에서 본 조형물처럼 "쓰레기를 뭉쳐두니 사람이 되었다"(p.191)는 '잔디'의 기억처럼, 편혜영 작품 속 인물들은 불시에 일어난 일에 무너지는 인간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할 수 있는가 돌아보게한다. "어떤 얼굴은 어둠 속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p.191) 는 아내의 말은 보통의 삶 속에 감춰진 우리 자신의 잔혹한 일면일지 모른다. 아내인 나 자신조차 "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5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나를 툭 치고 가는 임시교사에게 분노를 느끼는 인간이 될 줄 몰랐다. " (p.190) '원더박스'의 수만또한 자신의 실수보다는 자신을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한 김을 찾아 다닌다. "수만은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나 무책임한 행동에 피해 입은 것만 생각하느라 거래 당시 면밀히 살펴보지 않은 제 실수는 잊어버렸다. 일부러 상관없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데 몰두하다 보면 명백히 다른 사람 탓이 되니까."(p.112)
'개의 밤'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처남의 폭행사건에 대한 탄원서를 받아야 하는 지명이 나온다. 그는 장모의 인맥덕분에 회사에서 팀장을 하고 , "해고자를 정하거나 유족과 사고 보상액을 하는 게 주된 업무"(p.148)이다. 지명은 처남의 사건에 대해 "처남 스스로 그렇게 했다. 감당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p.151)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사고를 당한 장이 그 전날 마신 음주량을 계산하느라 바쁘다. " 내몰려뵈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왜 사람은 성격 차이나 정치적 견해, 나쁜 결과를 초래한 실수때문이 아니라 염치와 수치 때문에 화를 내게 되는지 말이다." (p.159) 지명이 결국 보상을 위해 동핸한 안에게 탄원서를 내밀면서 지명은 자기 행동의 합리화를 찾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녹녹치 않음을 작가는 '우리가 나란히'에서 보여준다. 사기사건의 피해자가 된 두 우지와 나의 모습으로. 소녀이로는 "소년은 늙는다:는 말이다. 늙은 소년의 삶을 어떻게 이어지는가? 아버지의 죽음과 무너지는 가정 속에서 유준과 소진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소년이로>에 수록된 단편 8편의 질문 일 것이다.
"하느님은 아무도 벌하시지 않는다고 우리를 벌하는 건 우리 자신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대신 아내와 잡은 손에 힘을 주었고 그럼으로써 아내가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일에는 침묵하고 모든 것을 사죄함으로써 처남의 죄를 하찮게 만들어버렸음을 모른척했다. 아내에 따르면 모두의 인생에 죄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죄가 없었다."(p.155) 아내에게 처남의 죄를 말하는 대신 자신의 지위와 자신의 타운하우스를 유지하는 지명처럼, 우리는 침묵함으로써 매순간 죄에 대한 탄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는 당신의 침묵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질문한다. 지명의 아내가 하는 모임의 변호사처럼 " 모른 척 하거나 아내 편을 드는 건 모임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서이리라. 물론 그것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p.155) 어쩌면 작가의 진중한 질문은 당신의 삶은 그들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가를 묻고 있다.우리가 대면하는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를 성찰하게 한다. 작품 속의 인물 누구에게도 쉽게 이입하기 어렵게 만든 거리감은 작가의 교묘한 연출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작품 속 인물 누구도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에 진정으로 공명하지 않은 타자적 입장을 취한 것처럼 독자에게 냉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독자를 관찰자로 등장시킨다.
작가가 풀어내는 구성은 각 작품의 사건보다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함으로써 사건이 아닌 사건에 응답하는 자세를 들여다 보게 한다. 한나 아레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가 행한 일 때문에 고통받아야지 그의 행위가 야기한 타인의 고통때문에 고통을 받아서는 안된다"(p.57)고 말했다. 아렌트의 말처럼 진정한 고통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인지로부터 시작한다는 엄중한 사유는 편혜영 작품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그것이 자신의 죄임을 알지 못하는 무능으로 비롯함인지 모른다. 작가는 이 작품들에 "아픈 사람들이 많은 소설이어서 실패라는 말을 나란히 두기 힘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패도 자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실패는 알지 못한 , 침묵과 선택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소년은 늙지만 그것이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님을 작가는 역설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