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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문학과지성사 #SF앤솔러지
코로나19의 창궐 이후, 평소 전염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샀고, 파올로 조르다노의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라는 책도 읽고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평소 SF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라서, SF 작가들이 보여주는 전염의 시대 또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문학과 지성사의 『팬데믹』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운이 좋게도 서평단에 선정되었다. 좋아하는 작가님들께서 참여하셔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기대에 부합할 만큼 인상적이고 재밌는 단편 소설들이었다. 듀나 작가님의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과 배명훈 작가님의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를 가장 재밌게 읽었다.
소설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은 듀나 작가님의 독보적인 세계관이 보이는 것 같아서 좋았다. (제목만 보고서도 소설이 맘에 들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은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해 육지가 모두 물에 잠기자, 거대한 고래의 등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가 살던 고래인 해바라기가 죽고 나서, 다른 고래의 등을 찾아 나서지만 쉽지 않다. 고래가 죽은 것은 고래 간의 전염병 때문이라, 기존에 살던 주민들은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자신들의 고래도 병에 걸려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희망은 없었다. 우리에겐 노도, 돛도 없었다. 이렇게 해류에 맡기고 떠돌다간 낮과 밤 어딘가에 쓸려갈 것이고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다. _p.66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소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특히 아주 즐겁게 읽었던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이 2113년인데, 이 시기의 말에는 파열음이 없다. 예를 들면 ‘탈출’을 ‘달줄’로, ‘카타르시스’를 ‘가다르시스’로 발음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후 “2020년의 사람들이 2019년의 삶을 불결하다고 느기기 시작”했고, “2021년 사람들은 2020년의 생활 양식마저 비위생적이라고 느겼고”, “2022년 사람들은 그 2021년에 대해서도 우월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미래 세대의 변화된 생활 양식을 보고서, 정말 미래엔 이렇게 살 것 같아서 좀 충격적이기도 했다. 원래 마스크란 아픈 사람이 쓰거나, 미세먼지를 차단하려고 쓰는 것이었는데, 이젠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활 양식이 빨리 변한다면 2113년까지 가지 않아도, 더 빠르게 많은 것이 변화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한지에게서 날아온 침이 얼굴에 닿았다. 비명을 질러야 했지만 어이없게도 나는 가다르시스를 느겼다. 그 순간 나는 개달았다. “가다르시스를 느겼다”라는 말은 반드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라고 발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침이 잔뜩 튀도록. _p.157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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