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받았던 과제는 ‘사랑이 부담스러울 때’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다. 과제 제출 날, 교수님께서는 갑자기 몇 명을 골라 발표를 시키셨다. 나는 절대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으면 했다. 어릴 적 부모님의 맞벌이로, 나와 동생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기억에 관하여 썼기 때문이다. 이젠 부모님을 이해하지만, 외로운 기억이 속상한 건 여전하다. 그래서 내 과거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다행히 다른 학우가 지명됐고, 발표는 피할 수 있었다.
『하틀랜드』를 쓴 세라 스마시가 대단하다고 느껴진 건, 가난과 수치심의 기록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는 데 있다. 나와 달리 세라는 적나라하게 문제를 드러내고 근원까지도 고민했다. 그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공공 기록과 신문, 편지, 사진의 기록을 맞추어 봤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들의 일화를 알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면담을 해왔다고 한다. 그녀가 이 책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을까. 말하기엔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가난과 수치심에 대한 것은 더욱 그러하다.
이야기는 오거스트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위엄있는’, ‘존경받는’이라는 뜻을 가진 오거스트(August). 오거스트는 세라의 상상의 딸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굳건히 지켜주는 나침반이었다. 캔자스의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난 그녀가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은 것은, 그녀의 고군분투 덕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범죄자가 되는 것이 캔자스 하층민의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능력만 있으면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를 나쁜 사람으로 여기기 쉽지. … 내 삶 최대의 행운이라면 내가 그게 옳지 않음을 알았다는 거야. _p.406 「나의 출신지」
내용 중에 차가 고장 났으나 돈이 없어서 수리하지 못해서 경찰을 피해 다니는 장면이 있었다. 경찰에게서 매겨진 벌금을 내지 못하면 감옥으로 가야 한다는 현실이 고달프다고 생각했다. 그런 범죄 기록이 생기면 직장에서 일할 수 없고, 기록을 없애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시작과 끝에는 항상 돈이 있었다.
나는 이 작은 여자아이가 보여주는 성공에 대한 야망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녀 안에 울린 “화재경보기”(p.237)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경제적 대물림을 끊어내려는 시도였다. 대물림을 끊어내고, 고통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다짐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대학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생략했다. 그저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만 언급할 뿐이다. 서빙 알바를 하면서도 집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구상만 하고 실제로 탄생시키지 못한 최상의 것들이 너무나 많아. 너라는 아이처럼. 네 영혼이 어딘가에 만들고자 하는 나라처럼. 추수기 달 아래에서 농번기라 노곤하지만 맑은 눈으로 기대를 가득 품고 있는 한여름의 나라를 꿈꾸어본다. _p.414 「나의 출신지」
사실 문제는 우리의 현재가 아니라 엄마의 과거에 있었달까. 엄마는 안정감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수도 없이 거처를 옮기고 가난에 시달렸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베티는 지니를 데리고 60번도 넘게 이사를 했었다. _p.304 「지붕이 새는 집」
읽으면서 나와 세라, 우리 엄마와 지니를 겹쳐 보기도 했다. 야망을 품었으나 이루지 못한 지니의 처지가 우리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경영학과로 대학에 가고 싶었다는 엄마의 말이 떠오르면서, 내 대학 생활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난 엄마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라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고 확신한다. 세라 스마시는 이 책을 엄마 지니에게 헌정했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 엄마에게 멋진 무언가를 헌정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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