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나비를 죽인 적이 있다. 날개 대부분이 찢어졌으니 죽었다고 봐도 되겠지.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 저질러버린 일이었다. 노랑나비를 잡아다 우유갑으로 만든 집에 넣었다. 예쁜 나비는 순간에 형편없게 되었다. 제대로 말리지도 않은 우유갑 안에서 날개는 젖고 몸엔 힘이 빠졌다. 나비에게 집이라니, 전형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였다. 만약 나비가 살 환경이 갖춰졌다고 해도 그것이 자유는 아닐 것이다. 인간과 나비는 다르다. 다소 충격적이었기에 가슴이 뛰었다. 그제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깨달았다. 의도치 않게 다른 존재를 불구로 만들어버렸다.
이 책에 담긴 단편들은 다양한 타자와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내 어릴 적 나비에 대한 기억처럼 ‘나’와 타자의 경계를 생각하게 했다. 동물 심지어는 무생물과의 관계도 그려졌다. 종이 아이와 어린 왕자 오토마타 인형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분명 흔하지 않은 타자의 모습일 것이다. 작가는 누가 타자이고 아닌지에 대한 경계를 많이 고민한 것 같다.
물리적인 세계에서 ‘마음대로’는 경우의 수로 실현된다. 선택 가능한 경우의 수를 무한대로 늘리는 것. ‘무한한 자유’의 기계적 의미는 그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 20개의 교차로를 만든다면 경우의 수는 무려 1,099,511,627,776. 그러니까 1조가 넘는다. … 죽을 때까지 끝을 볼 수 없는 경우의 수는 무한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어린 왕자, 너는 자유로운 것 아닌가? 어린 왕자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_p. 183 「어린 왕자의 귀향」
각 단편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고요하다. 그러나 전개가 빠르게 느껴져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350페이지가 넘어서 얇다고 할 수 없는 책이지만 흠뻑 빠져 읽을 수 있었다. 깊은 몰입감을 경험케 했다.
전개가 빠르게 느껴진 이유는 소설 속 사건들 때문일 것이다. 하나같이 황당하고도 어처구니없었다. 모든 짝이 사라지고, 종이와 달팽이를 사랑해 결국 새끼까지 생기는 일이 일어나고, 잠든 사람들이 철탑에 올라가는 사건이 발생하고,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인형 스스로가 본인의 세계를 고쳐버린다. 그러나 소란스럽지 않으며, 결말은 당연하고 별것 없다. 그래서 꿈의 장면을 보는 듯했다. 정신없이 흘러가다 밍숭맹숭한 끝을 맞이하는 꿈과 같았다. 그래서 더 심오하고 흥미로웠다. 결말의 그다음을 생각하게끔 하는 소설들이었다.
“그게 다였다.”_p.350, 「서울 사람들이 죄다 미쳐버렸다는 소문이……」
다 읽고 나서 본 책의 표지는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엔 어두운 공간과 계단만을 봤지만, 이젠 문밖의 세계가 보인다. 뒤집혔지만 현실과 같은 세계말이다. 이것은 꿈의 세계가 아닐까? 작가는 무의식의 세계를 글로 표현한 것일까? 무의식의 세계라서, 솔직한 꿈의 세계라서 한껏 나약한 인간의 본성도 드러난다. 혼자가 되고 싶지만, 그러기엔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이 많이 나왔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 적이 있기에 소설 속 인물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혼자여야 했다. 숲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로 작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혼자라는 건 용기인 동시에 외로움이자 두려움이었다. _p.44~45 「짝」
난다에서 오래간만에 나온 소설 신간이다. 그동안 난다의 여느 책과 다른 분위기를 가졌다. 띠지에 적힌 “몹시도 특별한 소설”이라는 문구가 공감됐다. 난 신비하다는 수식도 덧붙여주고 싶다. 작가가 사용하는 만연체도 너무 맘에 들었다. 나열과 반복이 심하면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오히려 즐겁게 읽을 요소가 되었다. 신비하고 특별한 소설을 읽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그가홀로집을짓기시작했을때 #김진송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