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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란
- 박연준
- 13,500원 (10%↓
750) - 2020-03-14
: 3,387
『소란』, 박연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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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박연준 작가님의 『소란』은 내 안을 소란(騷亂)스럽게 하기도, 소란(巢卵)처럼 여유를 주기도 했다. 사랑을 읽을 땐, 글에 담긴 여유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뒤도 보지 않고 돌진하는 열렬함이 부러웠다. 이 산문집의 커버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열렬한 사랑을 바라보는 또 다른 열렬한 연인의 뒷모습이, 이 산문집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타오름을 두려워 않는 작가님 같았다. 글에는 사랑하는 대상들이 꼼꼼하고, 구구절절하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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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는 재가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타올라서 더는 태워버릴 것도 없는 잿더미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넘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고,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처럼 감정이 없는 편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 그릇은 너무 작다. 끓어 넘치는 화, 쓰나미 같은 슬픔, 애증이란 모순적인 감정을 감당하기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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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었다. 왜 이토록 슬픈지. 왜 슬픔은 나를 좋아해서 하필 내 위에서 요란하게 작두를 타고 싶어하는지, 아니 내가 슬픔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 슬픔이 나를 침범하도록, 기꺼이 침범해서 마음대로 농락하고 괴롭히도록 두었다. 반항할 힘이 없었고, 힘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슬픔이 활활 타오르는 죽은 나무 같았다.”
p.180 , 「슬픔은 슬픔대로 즐겁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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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소란은 언제쯤 잠재워지는가. 나는 작가님을 부러워했다. 소란을 잠재우신 것 같아서, 한껏 여유를 가진 것 같아서. 소란스러움이란 없는 분 같아서. 그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다시 또 소란스러울 사람은 있어도, 소란을 잠재워버린 사람은 없다. 소란은 계속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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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밤, 비밀로 얼룩진 생각들을 한데 모아 죄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 알고 있었어요. ‘비밀’이란 도대체 버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코웃음 치며 다시 곁에 돌아와 앉더군요. 끈질기게 살아남더군요.”
p.59, 「나는 나를 어디에서 빨면 좋을까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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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 버릴 수가 없는 각자의 사정은 던져 버려도 돌아오는 부메랑, 뻗어 나가도 돌아오는 메아리와 같다. 숙명과도 같은 슬픔을 마주하는 그녀, 윤동주의 시 팔복(八福)를 읽는 그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되뇌이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봤다. 슬픔을 벗어나려 했던 작가님처럼, 나도 떠난 때가 있었지만 그곳엔 원하던 것은 없었다. 남는 건 허탈함 뿐이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슬픔은 슬픔대로 즐겁다”는 산문의 제목처럼, 똑바로 마주하는 일뿐이다. 슬픔 안에서 기꺼이 헤엄치는 또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며, 내 소란은 조금이나마 고요해졌다.
#소란 #박연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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