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이채은님의 서재
  • 사라진 세계
  • 톰 스웨터리치
  • 14,400원 (10%800)
  • 2020-02-19
  • : 698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허블
-
소설 속 은조쿠 박사가 5,000년의 미래 세계를 목격한 경험을 서술하는 장면.
“수백만 명이 어깨로 피라미드를 떠받쳤고 … 그렇게 자신들이 짊어진 도시 아래에서 태어나고 살다 죽었습니다. 아래 사람들은 피라미드 안에서 사는 왕족들이 먹다 남긴 부스러기와 쓰레기로 연명했죠. 굶주리고 헐벗은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부자들은 잘 지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빛의 파동으로 불멸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죽지 않게 되자 불멸의 사람들은 오히려 죽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삶이란 의미가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지옥이 신의 부재라고 생각했지만, 지옥은 죽음의 부재입니다.”
-
영화 ‘샤이닝’에선 고립된 산속 호텔의 관리를 맡은 한 가족이 나온다. 영화 초반엔 문제없이 관리인으로서의 일상을 즐기며 지내지만, 그것도 잠시. 영화 내 주인공들은 얼마 못 가 시간이 흐르는 감각이 무뎌져 버렸다. 마치 다른 시공간에 고립된 것처럼 말이다. 내게 소설 『사라진 세계』는 영화 ‘샤이닝’이 떠오르는 sf소설을 가장한 공포 소설이었다.

주인공의 소설 내 목표는 일가족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가까운 미래에 올 지구 종말 ‘터미너스(끝)’를 막는 것이다. 이 오싹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초반엔 알지 못했지만, 주인공들이 소나무 숲에서 길을 잃는 장면에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 하얀 나무를 지났다. 그들은 …돌아가려 했지만, 길을 잃고 하얀 나무를 다시 지나고 말았다. 은조쿠가 어이가 없었는지 껄껄 웃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소나무 숲을 헤치고 나갔지만, 결국 하얀 나무로 돌아오고 말았다.”

소설 내에는 인물들의 ‘복사본’들도 등장한다. 그것은 미래에서 과거로 온 도플갱어(“메아리”), 한 인간이 복제된 ‘트랜스휴먼’, 심지어는 거울과 거울 사이에 놓여 끊임없이 비치는 어느 존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시간여행을 하는 복사본들은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오지만, 그것은 또 다른 현재를 또 다른 미래 세계를 만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막을 새 없이 이어지고 만다.

나는 인간을 정말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인간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끝이나 죽음이 아니다.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끝없는 연속성이다. 끝없는 무한함 앞에 인간은 무력해지고 만다. 숫자 8과 같은 모양새로, 아무리 선을 따라가도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무한함 말이다.
-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 속 세계관에 점차 스며들었다. 마치 내가 시간여행을 하는 듯했다. 좋았던 장면이 많아서 꼽기가 어려웠기에 리뷰쓰는 것을 많이 고민했다. 리뷰를 잘 쓰고 싶은 만큼 재밌는 소설이었고,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라진세계 #톰스웨터리치 #동아시아 #허블 #SF #SF소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