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눈치우스

상당히 긴 자서전이라 번역 이외에 다른 내용도 많이 들어 있다.

동서양의 언어와 문화 차이를 극복한 방식을 여렴풋이 엿볼 수 있다.






초역을 다시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영어로 다듬는 작업은 번역이라는 과정에서 늘 가장 어려운 단계였다. (…) 사실은 단 두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처음에는 되도록 직역을 하는데, 이는 어쩔 수 없이 부자연스럽게 마련이다. 그래서 둘째 단계에서 부드럽고 세련된 영어에 가깝게 고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다이이치 호텔에서 나의 선생과 함께 시작한 최초의 번역 이래로 줄곧 변함이 없다.

(139)


지금은 번역이 ‘해결 가능한 문제’들과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해결 가능한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반면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어차피 해결이 불가능하므로 무시해도 된다. 즉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투리는 이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224)


그래도 일본어를 영어로 옮기는 번역자들은, 영어를 일본어로 옮기는 번역자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원작을 훨씬 잘 대해준 편이라고 생각한다.

(242)


그 외에도 미묘하고 모호한, 그리고 어쩌면 번역이 불가능한 의미를 전달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직역을 선택한 예들이 있었다. 나는 머리 좋은 독자라면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또한 여기에 대해 불만을 말하지 않은 스트로스야말로 참을성이 매우 많다고 생각했다. 편집자들은 유감스럽게도 원작에 없는 명확성을 번역에서 요구하는 일이 빈번한데,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원작에서 뭔가를 잘라내야 한다.

(245)


(다니자키 준이치로 {세설} 번역에 대해:)

앤서니 웨스트가 쓴 {뉴요커}의 서평이 가장 심했다. 이 작품이 ‘의학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한 것이다. 약과 주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이 작품의 전부라고 한다면 완전히 핵심을 놓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 나는 스트로스에게 항의를 하라고 권했으나, 그는 {뉴요커}에 실린 서평은 내용이야 어쨌든 좋은 서평이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실로 프로다운 자세였다.

(252)

“He replied that any review in the New Yorker is a good review.”


앞에서 가와바타에게 어떤 문장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해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선 더 이상 부탁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지만, 적어도 한번은 더 부탁했던 모양이다. (…) 내가 번역한 <센바즈루> 마지막 장이 제목인 [이중성(二重性)]이 무슨 의미인지 내가 물어본 모양이다. 본문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여기에 그는 너무 깊이 읽으려 하면 안 된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천문 용어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그저 그 말의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 사용했을 뿐입니다.”

(265)


게다가 이미 웨일리(Waley)의 번역도 있었다. 내가 새로운 번역본의 서문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나는 그의 번역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을 좇으려 해봤자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여러 가지로 {겐지 이야기}의 번역은 실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나 같으면 두 번째로 번역을 하느니 열여섯 번째로 하겠다.” 도널드 킨의 이 말은 그 일에 매달려 있던 몇 해 동안 내가 들은 것 중에서도 가장 예리하면서, 또한 가장 의욕을 저하시켰던 말이다.

(432)


서평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는데,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영국의 서평들이었다. 더 호의적이라서가 아니라, 더 똑똑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서평들은 가끔씩 엉뚱한 소리를 했다.

(435)


나의 번역에서 틀린 부분을 찾아 목록으로 만들어 보내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틀림없이 다른 번역자들 또한 같은 처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수준이 되어야 할 비평가들이 꼬치꼬치 흠이나 잡는 서평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은 문제다. 예를 들면 책에 나오는 지명만 골라 처음부터 끝까지 죽 훑어보고, 원작에 나오는 지명이 전부 나와 있지 않으면 ‘형편없는 번역’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436)


나는 왜 번역가가 되었는가? Tokyo Central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Edward Seidensticker /권영주 역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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