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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 많은 사람들이 간증을 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셔서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대다수는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성서가 판단의 기준을 그 사람의 열매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교회에서 가끔 일어나는 일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며 질서를 흐려
혼쭐이 난 여인들이 몇 있다.
심지어 교회 내 권사님도 계셨다.

전도사 시절,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아버지의 영이 천국에 가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고 있다고 하셨다.
그분은 예수님을 믿기 전, 어릴 때부터 절에서 자라신 권사님이셨다.

권사님에게 영적으로 무언가 보이긴 하지만, 속았거나 잘못 알고 계신 것으로 보였다.
드러난 부분에 대해 성서에 근거한 말씀으로 바로잡아 드렸다.

처음에는 직설적인 말에 기분이 상하셨는지 얼굴에 금세 티가 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다른 목사에게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 그랬다며 나중에는 잘못을 시인하셨다.

그리고 부족한 종이 티코를 타고 다닌다며 사위의 자동차도 주시고 헌금도 많이 드리셔서 당시 교회를 세우는데 큰 보탬이 되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성서 말씀으로 인도하셨다.
나는 신앙을 갖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할 때,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사람이 성령님과 인격적으로 소통하게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레미야서를 통독하는 중에 임하신 성령님이
어떤 분에게는 할아버지 나이에,
나는 신앙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임하셨다는
분명한 개인적 시간차를 발견하게 된다.

분명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2,000년 전 오순절에 임하셨고,

지금도 성령께서 원하시는 자들에게 임하신다. 

계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을 들려 주시기도 하시고, 천사를 보내 주시기도 하며 기적이나 표적을 보여 주신다. 꿈이나 환상도 있으며 성령의 감동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영인지 악령인지 검증을 어떻게 할 수 있나? 

그래서 기록된 성서가 판단의 기준일 수 밖에 없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다.
나는 평소 성령께서 명확하게 이해시켜 주셔야 행동하는 스타일이라, 감지될 때만 실행한다.

그런데 근래에 전북 익산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전도사님이세요? 장로님이세요?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마다 이 전화번호를 계속 보여 주시네요.”

그러면서 자신은 전북 익산의 ○○○교회 권사라고 하셨다.

속으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면서, 먼저 목사를 찾지 않고 전도사, 장로를 찾네. 내게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미리 알려 주시지 않았는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네, 그러세요. 권사님.
저는 한국성서선교회 소속 목사입니다.
아직 하나님께로부터 따로 알려 주신 것이 없어서요.......
건강하세요.”

그러자 또 연락을 주시겠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금을 하겠다거나 땅을 기증하겠다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잠시 든 생각은,
그런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권사님에게 전화번호를 보여 주신 것은 목사로서 내가 챙겨야 할 일이 있어서 개인 정보를 보여 주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드렸다.

“권사님,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니나 다를까, 이런저런 일로 하소연을 하셨다.
자초지종을 듣고 우선 급한 것부터 해결해 드렸다.

그리고 다른 일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전달해 드려,
지금은 평온을 찾으셨다.

하나님은 내게 먼저 알려 주시지 않고도
일을 실행하신다.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셨다는 것을 사후에 알았을 뿐이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 비밀을 그의 종들인 선지자들에게 드러내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신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있나? 결국 성령께서 알게 해 주셔야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을 쫓아다니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듣지 못했는데 남이 들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남이 들은 것이지 내가 들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와 소통을 원하시지 남이 아니다.
제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감각을 찾기를 바란다.

그것은 간단하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께서
이미 그렇게 역사하신다.

결국 문제는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
사랑을 겸한 믿음으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다.

이번 일에 그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도 있고, 목사님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서 바쁜 다른 목사님들보다 공간, 거리를 초월하여 내가 가장 신속하고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셨음에 틀림없다. 또한 미리 알려주시지 않고도 부족한 종이라면 어떻게 처리할지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라 판단된다.

별로 충성도가 높지 않은 목사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계시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다 알고 보여주셨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이후에 감사했다.

그 권사님은 줄곧 감사하다며 연락을 여러 번 주셨는데, 거리가 멀어 뵌 적도 없어 얼굴도 모르는 분이시지만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 감사할 수 있으니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으리라.

성도가 처한 자리가 아무리 기가 막히고 불가능의 늪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황일 뿐이다.

내가 그 상황을 해결하려면 내 문제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실 일이다. 

어려울 때가 되어서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가까이 하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늘 가까이 계신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향하기만 하면, 거기에서부터 인도하신다.


시편 139편 9~10절

내가 a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a 히, '새벽 날개를 가지고')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אֶשָּׂא כַנְפֵי־שָׁחַר אֶשְׁכְּנָה בְּאַחֲרִית יָם׃

גַּם־שָׁם יָדְךָ תַנְחֵנִי וְתֹאחֲזֵנִי יְמִינֶךָ׃


9 If I take the wings of the dawn,
If I dwell in the remotest part of the sea,

10 Even there Your hand will lead me,
And Your right hand will lay hold of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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