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trash57의 서재
  • 대격변
  • 애덤 투즈
  • 29,700원 (10%1,650)
  • 2020-06-29
  • : 411

 대격변

The Deluge

 

 1944년,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44개 연합국 대표들은 미국의 브레튼우즈에 모여 전후 국제통화질서를 규정하는 협정을 체결한다. 이른바 브레튼우즈 체제이다. 각국의 통화가치를 미달러화에 고정시키고, 미달러화는 금에 고정시키는 일종의 금본위제이다. 이러한 브레튼우즈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세계은행)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1947년에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가 체결되었는데 관세 및 수출입 규제 등의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자유무역을 유지하려는 목적이었다.

 

 1931년 9월 18일 일본이 만주군벌 장작림을 폭살하면서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중일전쟁의 시작이다. 국제연맹의 주요 참가국이었던 일본은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하는데 많은 역사가들은 이 만주사변을 제2차세계대전의 전주로 생각하며 중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1931년 9월 21일 영국의 금본위제 이탈을 다가올 대파국인 제2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라 주장한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달러화 금태환 정지 선언 이후 지금은 화폐라는 것이 금에 고정되어 있지 않는 상태이다. 지금이야 대개 당연시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화폐라는 것의 가치가 뭔가에 연동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보면 유지가 가능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독특한 현상이다. 실제로 달러화도 금태환 정지 선언 이후 엄청나게 실질가치가 절하가 되었다. 바꿔 말해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했고 10년이 넘게 지나서야 살인적인 고금리와 경기침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나서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흔히들 1929년 대공황의 주요 원인으로 금본위제를 든다. 2008년도 그렇고 지금 코로나 사태도 그렇고 이유가 어쨌든 유동성 선호 현상이 극도로 발생할 경우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유동성을 공급해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원통화가 금에 연동되어 있는 금본위제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다시 달러화를 축으로 하여 다시 금본위제로 돌아가고 전후 서구 국가들이 급속히 경제성장을 이룬 점을 봐서는 딱히 금본위제 자체에 모든 원인을 돌리는 것은 매우 단순한 생각이다.

  

  제2차세계대전 후에 브레튼우즈 체제를 성립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제1차세계대전 이후 각국은 전쟁 이후의 통화체제를 어떻게 성립시킬 것인가에 고심하게 된다. 전쟁비용 마련을 위해 금태환을 정지시키고 통화량을 급속히 증가시키면서 전쟁 중에도 전쟁 이후에도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전후 혼란이 겹치면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사회불안이 퍼졌다.

  

  미국은 1919년, 전쟁 이전 금태환 비율로 달러화 가치를 복구하면서 금본위제로 복귀하고 영국은 1925년, 같은 방식으로 복귀한다. 금본위제로 복귀한다는 말은 통화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디플레이션 정책을 펼친다는 의미이며 통화가치 복귀는 단순히 금과 통화가치를 복구한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고 사회 내 가치체계를 그 이전과 연속적으로 유지하려는 의지도 있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각기 절하된 통화가치로 복귀하게 되는데 이는 그 이전의 가치체계의 전복 뿐만 아니라 급격한 사회 내 혼란이 반영된 결과이며 이는 심각한 내상을 의미한 것이었다.

 

 금본위제로 상징되는 안정된 통화가치 유지라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이 보조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제1차세계대전 전후 미국의 전세계적 패권과 국제질서 수립의 하나의 상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주장 중 하나이다.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 막판에 전쟁이 말려 들어가게 되는데 참전 이전에도 중립국이었지만 협상국 (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에 전쟁물자 조달과 자금 대여를 통해 관여하게 된다. 저자는 전쟁물자 생산이라는 미국의 경제생산능력보다는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을 미국 패권의 부상과 확립을 뒷받침해주는 핵심적인 요소로 본다.

  

  윌슨 대통령은 “승리 없는 평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참전 이전에도 내걸며 협상국을 압박하는데 이는 유럽의 제국주의 체제와 질적으로 차별화된 것이며 미국의 문호개방정책 ( Open Door Policy)이라는 기존의 미국의 일관된 정책과 결부되어 향후 전후 질서를 미국이 어떻게 규정하고 주도하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요소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윌슨의 “승리 없는 평화”에 대응해 억압적 군국주의 전제정에 대응하는 자유주의 체제 수호 투쟁이라는 것으로 전쟁을 규정하는데 이는 상기의 미국의 정책과 더불어 향후 전후 질서의 향방에 또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윌슨 대통령에 대한 익숙하고 오랜 신화 중 하나가 민족자결주의로 대변되는 그의 숭고한 사상을 실현하고자 기존의 유럽 제국주의를 대체할 국제연맹을 주도적으로 창설했지만 결국 국내의 반대파와  영국과 프랑스의 퇴행적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좌절된 순교자였다는 것이다.

 

  저자가 그려내고 분석한 윌슨은 이러한 신화와 사뭇 다르다. 물론 자유주의 신봉자이긴 했지만 점진적 진보를 믿었지 흔히 알려지듯 혁명적 전환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면에는 철저한 현실주의적이며 미국의 패권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기에 언급한 미국의 문호개방정책은 그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것으로 그는 충실히 계승하였고 그 이후 공화당 정부에서도 일관적으로 유지되었고 미국은 금융의 힘으로 그리고 군사초강대국으로 전환할 수 있는 막대한 경제력과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이를 관철해 나갔다고 저자는 논증한다.

 

 유럽에 대한 불신과 경멸을 윌슨 대통령은 견지하였고 이는 그만의 독특한 것이 아니고 미국 주류 정치계가 공유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상태에서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의 창설을 주도하였지만 어정쩡하고 일순 모순된 행동을 반복한다. 국제연맹이라는 공식 국제체제에 미국이 얽매이고 얽히는 것은 그 자신도 마다했다는 것이다.


  윌슨도 그렇지만 그를 이은 공화당 정부도 국제연맹 대신에 협상국에 빌려준 전쟁채무로, 즉 채권자의 힘으로 때로는 군비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암묵적 협박을 기반으로 전후 국제질서를 만들어가고 주도한다.

 

  저자는 이러한 전간기의 질서를 상당 부분 “가장 결정적인 요소, 즉 미국의 새로운 패권이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것 (The absent presence of its most defining element – the new power of the United States)으로 규정한다.


  공식적인 국제기구들을 통해 전후 질서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막대한 전쟁채무를 빌려준 채권자의 힘, 그리고 군사강대국으로서 전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기반으로 이끌어 갔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금본위제이다.


  금본위제를 흔히들 황금족쇄라 부른다. 말 그대로 발권력이 금에 묶여 있다는 말이다. 이 족쇄에 묶여 있는 것은 중앙은행장들만 아니었다. 미국은 상기의 힘을 기반으로 군축회담을 주도하게 되는데 이는 금본위제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은 전후 기존의 제국주의 체제를 자신의 문호개방정책을 기반으로 하여 변화시키려 하는데 이는 기존의 식민지 권역의 경제체제 대신 자신의 앞선 금융과 경제력으로 실리를 챙기겠다는 것이었다. 이럴려면 기존의 제국주의 체제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민족자결과 자유주의 체제 확산이고 군국주의 억제이다. 금본위제 회귀로 상징되는 통화가치 안정은 디플레이션 정책, 즉 군비축소 주도의 정부지출 억제를 의미하기도 한 것이었다. 황금족쇄는 제국주의로 상징되는 군국주의자들의 발목을 묶는 족쇄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일본의 만주사변보다 영국의 금본위제 이탈을 더 핵심적으로 본 것이다.

 

  미국의 제1차세계대전 후 패권을 장악하고 전후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나중에 파국으로 끝나게 되듯 불안정한 기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그렇게 파국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하지 않는다. 각국에 많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세력과 힘들도 있었고 많은 기회들이 있었음을 세세히 나열하고 분석한다. 오히려 짙은 아쉬움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만일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주도적으로 서로의 안보를 보장해주고 연합국간 전쟁 채무를 전향적으로 처리하여 독일의 배상금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효과적으로 잠재적인 국제질서의 반란자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소련을 제어해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 체제의 집단안보도 냉전이라는 것이 주된 요소도 작용했겠지만 제2차세계대전 후에 실현된다.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겠지만 요즘 돌아가는 세상 판이 전간기와 비슷하다는 인상이 든다. 미국이 대공황의 와중에 국제질서에 손을 떼고 국내문제에만 몰두한 국수주의로 들어간 시기에 전간기의 세계는 제2차세계대전으로 빠져들어갔다. 지금 미국은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갔던 국제기구와 국제체제에서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지난 역사의 한 시기와 비교하여 길잡이를 삼을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 역사를 보는 이유 중 하나이긴 하다. 그러나 그대로 대칭시키려는 유혹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국제기구와 국제체제는 살아 있고 미국은 군사강대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아니라 지금은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는 초군사강대국이다. 또한 핵무기가 있는 세상이다.

  

  전간기의 역사가 그대로 지금의 상황에서 참조할만한 쪽집게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대로 대칭시키면 결론도 그렇게 되는 것으로 나올텐데 너무 우울해진다. 그러나 뭘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의 상황을 전간기에 비추어 보아 가장 참조할만한 나라가 프랑스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딜레마는 확실한 안보보장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은 아예 그러한 안보보장 약속을 하는 것을 구속받고 얽혀들어간다는 인식 하에 단호히 거부하였고 영국은 미적거렸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이러한 안보보장을 받을만한 확실한 레버리지도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전후 미국 주도의 나토 체제라는 집단안보보장 체제에 들어가면서 해소된 듯해 보이지만 그러나 이것도 협상력과 레버리지가 없으면 일방적 의존에 불과하다. 그래서 프랑스가 핵무기 개발에 매달렸고, 무엇보다 독일과의 관계 개선,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더 나아가 유럽연합을 주도적으로 창설하는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작금의 상황을 명청교체기의 역사에 투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 상황에 현재의 상황을 투사하여 중국과 미국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귀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크다. 명청교체기의 교훈은 어떤 측을 선택해야 되느냐의 문제를 떠나 당위론에만 매달렸을 때의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당위론이야 그 내적 구조상으로는 합리적이고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고귀한 것이겠지만 그 댓가를 남들이 치루어야 한다면 그저 무책임한 일이고 악이다. 그러한 공허한 당위론이 형태만 달리하여 지금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비생산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데 전간기에 미국의 패권이 어떻게 부상하였고 그에 따라 어떻게 세계 질서가 재편되었고 어떻게 파국에 이르렀는지 이 책을 통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들어가는 말( Introduction)이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들어가는 말을 건너 뛰고 본문을 읽고 마지막에 들어가는 말을 읽는 것이 나았다. 우선 들어가는 말이 서론이었지만 사실상 내용은 결론이고 본문의 요약이었는데 배경지식과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들어가는 말의 내용은 너무 어려웠다. 차라리 가볍게 읽고 넘어가며 본문을 읽고 나서 다시 읽거나  아예 생략하고 본문을 먼저 읽고 들어가는 말을 나중에 읽는 것이 방대한 본문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셈이 되어서 오히려 독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