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되어 다행이다.
olivia19 2025/08/1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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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보다
- 셔우드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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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 2025-07-30
: 901
그러니까 시작은 스콧 피츠제럴드부터였다. 나는 그의 단편 모음집을 이제 막 끝낸 참이었고 바로 이어진 독서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이 스콧 피츠제럴드가 추앙했다는 미국 작가 샤우드 앤더슨의 이 책, “나는 바보다“이다.
미국에는 가본적도 없으면서, 하물며 1900년대 초 반의 미국은 영화로도 제대로 접해본 적 없으면서 나는 1900년대 초에서 2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의 미국적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에어컨 아래 편안한 내 침대위에 있으면서도 꼬질꼬질 땀에 절어 흙먼지 날리는 미국 어느 목조주택의 창밖으로 새가 물어다준 이상한 이야기들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묘하다. 12개의 단편이 제각각 12개의 묘한 감정들을 매번 불러왔다. 작가적 상상력이 때론 동화같고, 때론 콩트같고, 오래전 이야기책 같이 발현되었지만 그 안에는 허무와 그리움이 일관되게 흘렀다.
이 책의 묘함은 여기에 있다. 내가 만난 감정은 그런 것이었지만, 어떤 요술 안경처럼 보는 사람마다 각자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그 마음들을 만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허무와 그리움(그것이 타인에 대한 그리움이든 자신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든 지난건 모든 시간에 대한 것이든)을 보았지만 보는 이마다 서로 다른 것을 만나게 되는 그런 만화경 같은 것 말이다.
우수에 젖었고 슬펐고 옛기억이 떠올랐고 아련했고 우스웠다. 문장은 짧은데 구체적 묘사가 뛰어나 등장인물과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그림처럼 펼쳐져 한 여름밤 이야기에 쏙 빠진 어린아이같은 기분이 되곤 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리움을 알게 된 지라 겉으로 드러난 묘사보다 그 안에 흐르는 등장인물들의 감정들이 콕콕 박혀와 나는 꽤 마음이 동동거렸다.
“숲속의 죽음”과 “달걀”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과 이야기였음에도 너무 보편적인 부모의 모습이 스쳐갔고 강렬해서 이 파트만이라도 읽어보라며 내 감정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슬픈 나팔수들”은 인간으로서 역할하며 사느라 수고하는 모든 이들의 얼굴들이 떠올랐고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낯선 동네에서”는 그리움이 왈칵 쏟아지는 기분이었는데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전하는 화자의 슬픈 마음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전쟁”이나 “어느 현대인의 승리”, “그런 교양”은 비틀어 전하는 풍자가 잘 담겨있는데, 예나지금이나 인간사 비슷하다 싶으면서도 작가의 말처럼 “세상 어느 곳에서든 두 삶의 소소한 사정이 아예 똑같을 수는 없다.”
아마도 나는,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이 작가와 이 책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거다. 이미 나는 그러하고, 그렇다고 내 삶이 달라졌을리 없고 이 책 또한 다른 책들처럼 곧 지워질거다. 그러기에 꼭 지금 할 수 있는 말, 또는 해야하는 말, “만나서 좋았다. 알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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