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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튀
  • AI 시대의 사진
  • 김경훈
  • 19,800원 (10%1,100)
  • 2026-04-27
  • : 2,100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청록빛 하늘색 바탕 위에 영문 제목 ‘PHOTOGRAPHY IN THE AGE OF AI’가 큼직하게 자리 잡고, 그 위로 바다를 뛰어오르는 고래, 달 위의 우주인, 야구장의 함성, 그리고 그 유명한 ‘셀카 찍는 원숭이’가 콜라주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한국인 사진기자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로이터 통신 김경훈 기자가, 25년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AI 시대의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지 묻는 책이라고 했어요. 평일 저녁, 책상 한쪽에 미러리스 카메라를 올려두고 표지를 펼친 채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진 않았어요. 그저 주말마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동네 골목을 걷거나, 가족의 풍경을 한 컷씩 남기는 정도예요. 그런데 요즘은 휴대폰 한 번이면 ‘있을 법한 풍경’을 AI가 만들어 주는 시대잖아요. 제가 굳이 셔터를 누르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번쯤 정리해 보고 싶었던 차였습니다.

3장은 AI가 만든 이미지와 카메라가 기록한 사진의 차이를 차분히 짚어 줍니다. 김경훈 기자는 다운증후군 아버지가 갓 태어난 아들을 안고 있는 ‘THEN’ 사진과, 그 아이가 자라 의사가 된 ‘NOW’ 사진을 예로 들며, 사진이란 시간과 감정과 분위기가 한데 어우러진 ‘커다란 덩어리’를 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56쪽의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사진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실재하는 시간과 감정이 없습니다”라는 문장 앞에서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어요. 같은 페이지의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가짜 사진은 경험 없는 세계의 산물입니다”라는 표현도 인상 깊었습니다. ‘경험 없는 세계’라는 말이, 회사에서 매일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는 제 일상 위로 겹쳐졌어요.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물과, 실제로 누군가가 통과해 온 시간이 담긴 결과물은 분명 다른 무게를 가진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58쪽의 “사진에 담긴 찰나는 그 순간을 둘러싼 훨씬 큰 경험과 의미의 덩어리에서 잘려 나온 작은 조각입니다”라는 구절도 좋았어요. 셔터를 누르는 1초 뒤에는, 그 자리에 가기까지의 모든 길이 함께 들어 있다는 말로 읽혔습니다. 60쪽의 “사진은 경험을 기억하고 감정을 기록하고 이 둘을 다시 불러내는 매개체입니다”라는 정의도 오래 곱씹게 됐어요.


11장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그리스 시프노스의 어느 계단에서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다 김경훈 기자는 본인이 2025년 국제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1만 2천여 장을 찍었지만 실제로 송고된 사진은 1퍼센트 남짓이었다고 고백해요. 초당 40프레임까지 찍히는 미러리스 시대, 사람의 동체 시력은 30프레임 정도라고 합니다.

196쪽의 “요즘은 내가 정확히 어느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인식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였다”라는 문장은, 솔직히 제 이야기 같았어요. 가족 여행 갈 때마다 ‘일단 많이 찍고 나중에 고르자’는 습관이 생긴 지 오래거든요. 198쪽에서 장자의 호접몽을 빌려 “내가 사진을 찍은 건지, 카메라가 사진을 알아서 찍어 주는 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 종일 기분이 묘했습니다”라고 적은 대목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짚어 봤을 감정 같아 반가웠습니다. 양궁 경기에서 날아가는 화살을 누구든 찍을 수 있게 된 시대에, 결정적 순간이란 결국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와 사진가가 표현하려는 의미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어우러지는 일이라는 정의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셔터 찬스’라는 말이 사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조어라는 설명도 새로 알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운 좋게 잘 찍힌 한 장과, 판단과 우연과 기다림이 함께 만든 한 장은 같은 사진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들렸어요.

16장은 사진을 ‘소통의 도구’로 다시 정의합니다. 같은 풍경 앞에 서도 어떤 사람은 멀리 펼쳐진 산자락을 담고, 어떤 사람은 그 옆에 서 있는 친구의 표정 한 조각만 잘라 냅니다. 무엇을 프레임 안에 넣고 무엇을 덜어 낼지 정하는 그 짧은 판단이, AI 시대에도 사진가만이 쥘 수 있는 무기라는 이야기였어요.

이 부분이 회사 업무와 묘하게 포개졌습니다. 기획안을 쓸 때도 결국 어떤 자료를 본문에 올리고 어떤 자료를 각주로 미루느냐가 글의 인상을 좌우하잖아요. 도구가 아무리 좋아져도, 무엇을 보여 줄지 정하는 사람의 시선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왔습니다.


굳이 아쉬움을 꼽자면, 사진기자라는 직업적 맥락에서 풀어낸 사례가 많아서 일상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살짝 거리감이 드는 대목도 있었어요. 다만 사례마다 사진가의 윤리와 시선을 짚어 주기 때문에,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도 마지막엔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책을 덮고 며칠 동안, 출퇴근길 풍경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어요. 예전에는 ‘예쁜 장면이면 한 장 찍자’ 정도였다면, 요즘은 ‘이 풍경의 어떤 덩어리를 남기고 싶은가’를 한 번 더 떠올리게 됩니다. 회사 일도 비슷한 것 같아요. AI가 초안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 낼지 판단하는 사람의 자리는 오히려 더 또렷해지는 듯합니다.


이 책은 휴대폰이든 카메라든 일상에서 사진 찍기를 즐기는 분들께 먼저 권하고 싶어요. 셔터를 누르는 행위에 대해 조금 더 진중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는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AI가 만든 결과물과 사람이 만든 결과물 사이에서 자신의 일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고민하는 직장인분들께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사진을 통과한 이야기지만, 결국 사람이 직접 걸어 본 시간의 가치를 다시 묻는 책이니까요.

한 줄로 정리하면, AI가 그럴듯한 이미지를 쏟아 내는 시대에 셔터를 누른 사람이 통과해 온 시간이 어떤 무게를 갖는지 차분히 보여 주는 책입니다.

오월 중순, 창밖의 초록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고 있어요. 카메라를 들고 가까운 공원이라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 계절입니다. 이 책을 함께 손에 쥐고 걷는다면, 셔터를 누르는 한 번의 순간이 조금 더 깊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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