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데이비드 매콜리는 영국에서 태어나 10살 때부터 미국에서 자랐다.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했지만, 졸업 무렵 일러스트레이터로 진로를 바꿨다.
고딕 판타지 그림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프랑스 아미앵으로 떠났고, 닷새 동안 아미앵 대성당을 스케치하며 여러 장의 그림을 완성했다.
이 그림들이 그의 첫 번째 책, 『대성당』(1973)으로 이어졌고, 건축 시리즈의 서막을 열었다.
무려 26세에 낸 첫 그림책이 칼데콧상을 받았다니 놀라운 일이다.
▶가상의 도시, 그러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작년에 우리 아이가 건축에 푹 빠졌을 때, 매콜리의 원서를 빌려주었었다.
그때는 그림만 후루룩 넘겨봐서 단순히 ‘사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식 그림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가상의 도시와 인물을 설정한 완전한 창작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당의 구조와 제작 과정은 실제 고딕 성당을 바탕으로 한 정밀한 조사와 연구의 결과다.
그래서 이 책은 건축학과 세특 독서록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탄탄한 자료성을 갖고 있다.
▶중세 유럽, 신을 향한 열망의 시대

13세기 유럽은 교회와 카톨릭이 사회의 중심이었고, 십자군 전쟁의 열기로 들끓던 시기였다.
“신이 원하신다”는 구호 아래 프랑스는 대성당 건축에 온 힘을 쏟았다.
매콜리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책의 첫 장에서 간결하게 정리하며, 아이들에게 역사적 시간 감각을 일깨워준다.
▶대성당의 시작, 그리고 대여정


이야기의 무대는 쉬트로라는 가상의 마을이다.
쉬트로의 사제단은 전쟁에서 돌아온 십자군을 통해 뛰어난 건축가 윌리엄의 소문을 듣고, 그를 성당 건축의 책임자로 고용한다.
터를 다지고 벽을 쌓아올리고 천장을 쌓고 벽과 유리를 장식하고 첨탑과 종을 올리는데 무려 9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처음 대서당을 설계하고 작업을 시작한 주교과 설계자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쉬트로는 마지막까지 성을 완성시킨다.

각각의 장면들 속에서 당시의 과학 기술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얼마나 많은 돈이 투입되었을지 막연하게나마 느껴진다.
단순히 건축에 대한 정보만 그려낸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속에서 중세 사람들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어
건축책임과 동시에 세계사 책이기도 하다.

중간 중간 홍예벽이니 트러스니 버팀벽이니 건축 용어들이 나오지만
맨 뒷부분에 친절한 해석이 덧붙여져이기도 하고 극사실적인
매콜리의 미친 디테일의 일러스트만 보아도 이해가 쇽쇽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20년 전 유럽 배낭여행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성당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장엄한 건축물이 수십 년의 시간, 수천 명의 인력, 그리고 인간의 신념이 쌓인 결정체였다는 사실을.
▶AI 시대, 여전히 남는 것은 ‘손의 힘’

요즘은 AI로 누구나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이젠 그림 잘 그리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말도 자주 들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AI 이미지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진짜”가 주는 감동은 여전히 대체되지 않는다.
인간의 손으로 시간을 들여 정교하게 완성한 그림에는,
그 어떤 알고리즘도 흉내 내지 못하는 울림이 있다.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손길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그 욕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다.”
완벽한 음식 사진, DIY 영상, 홈 리모델링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도
결국 ‘손과 기술’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그림 또한 양극화되고 있다.
애매한 그림은 감동을 주지 못하지만, 정교한 그림은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데이비드 매콜리의 그림이 바로 그런 그림이다.
시간과 노동, 인간의 손이 만들어낸
그중에서도 오랜 세월을 견뎌낸 ‘역사적 건축물’을 통해
인간의 기술과 예술, 신념이 한데 어우러진 "진짜의 아우라"를 보여준다.
* 출판사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만 제공받아
자유롭게 쓰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