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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님의 서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이상하게도 나올 때마다 현대 한국의 상황와 얼추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 것같다. 세종을 표방하며 대통령이 되었던 노무현 시기에 세종실록편이 나오고, <왕의 남자>가 유행하고 코드 인사로 정국이 논쟁에 휩싸일 때 연산군일기가 나왔다. 이번에도 "현실"은 망각한 채 "명분"을 내세우다가 파멸로 가게 되는 시기인 인조실록이 나와서 현재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 의미로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의 의미가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것같다.

인조 정권은 40년동안 소외되었던 서인 정권의 쿠데타로 수립되었다. 인조가 집권하면서 내세웠던 것은 기본적으로 "광해군이 했던 것과는 다르게!!" 라는 것이었고, 불행히도 전 왕 광해군의 심각한 편중 코드 인사, 왕실 권위 회복을 위한 무리한 궁궐 공사, 사소한 고변으로 인한 역모사건의 남발 등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명-후금 간의 중립외교는 분명히 성공적인 정책이었다는 것이 조선의 불행이었다. 인조의 "광해군과 다르게!!"라는 기치는 외교라인에서 심각한 실수를 야기시켰고, 이것이 정묘, 병자호란에 이은 어마어마한 국력 손실, 인명 피해와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외교적 치욕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럼 작금의 한국 사정을 돌아보도록 하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는 한나라당이 드디어 정권의 수혜자로 돌아왔고, 그들이 외치는 것은 "노무현과 다르게!!"라는 것이었다. 비록 친미적이라고 불평등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노무현 정부의 FTA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소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처리하고, 집권초기 북한과 중국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친미 성향과 대한민국 체제의 실제로 존재하는 것조차 불투명한 "체제 우월성"을 내세우며 과거의 우방인지 상관인지하는 미국에게 "어린지"로 대표되는 친밀함을 과시했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나. 광우병의 공포가 시작되어 두 달가까이 촛불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민간인 살상사고가 나도 어떠한 협박이나 외교용 카드를 가지지 못한 채 끌려다니고 있으며, 일본과도 독도 문제가 터지고, 중국은 노골적으로 한국의 친미 성향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고 우리의 영원한 우방 미국이 해 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인조 시절 명나라가 모문룡이라는 골치거리만 남겨줬지 별로 도와준 게 없는 것처럼 작금의 상황도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미국의 망해가던 명나라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의 영원한 친구이자 상관"이라는 뿌리깊은 신념과 미국내의 여러 단체, 그리고 주위의 나라들의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줄 아는 "이성적 사고"의 부재로 행해지는 외교적 결정은 이명박 정부가 인조시절에 겪었던 외교적 실패와 다름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인조와 서인 정권은 "구호"만 외치다 실패한 정권임을 역사가 설명해 주고 있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그 길을 수정한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도 휴가 기간에 "시련을 이긴 처칠"같은 이상한 책 좀 읽지 말고 (도대체 누가 그 "시련"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과거를 돌아보면서 인조정권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반성하고 깨달은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선왕조 시대와 현대 한국이 가장 큰 다른 점인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권리를 역시 "이성적"으로 이용하는 현명함이 사람들에게 나타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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