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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제목을 보고 삼국유사에 나오는 경문왕 설화가 생각났다. 귀가 큰 경문왕은 복두장이한테 큰 귀가 보이지 않게 복두를 만들게 했다. 이걸 비밀로 해야 하는 복두장이는 말을 못해 답답하다. 참다못한 복두장이는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 가서 소리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임금님 귀는 크다.”
그 뒤 대숲에 바람이 불면 이 외침이 흘러나왔다.
[대나무 숲의 임금님 귀] 책을 펼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경문왕 설화 그대로는 아니겠지?’
정말 아니었다. 한 꼭지 한 꼭지 상상도 못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 작품에서 할아버지는 손녀 가실이와 같이 복두를 만든다. 임금님 귀가 크다는 소문이 연기처럼 퍼질 즈음, 복두를 만들기 위해 궁궐로 간 할아버지와 가실은 임금님 귀가 보통 사람처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걸 보게 된다. 그런데 신하는 두 사람한테 임금님 귀가 크다고 소문을 내라고 윽박지른다. 이 설정이 경문왕 설화와 다른 재미를 맛보게 했다.
또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끌어가거나 전환하는 자연 묘사가 곳곳에서 돋보였다.
임금님의 신하 범교사가 찾아올 때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긴장감을 고조하고, 불안한 느낌일 때는 까마귀가 극성스럽게 운다. 불안할 때는 슉슉 도망치던 뱀이 머리를 휙 돌려 아가리를 벌린다. 복두장네 가족이 도망칠 때는 다람쥐 보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가슴이 내려앉아 몸을 낮춘다.
절묘한 묘사 덕에 이야기는 더 재미있었고, 결국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리드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하며 TV를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