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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쓰는 무지렁이
월든 천천히 읽기 7

불현듯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이 떠올랐다. 운동장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몇 개의 무리로 나누어 모이게 했다. 나는 4반에 편성되었다. 교실에 들어가서 받은 첫수업은 연습장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냥 단순한 동그라미가 아니고, 중심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선형으로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이른바 ‘동글뱅이‘였다. 나는 누구보다 다양한 동그라미와 나선들을 그렸다. 생애 첫 수업(나는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다)에서 선생님의 첫 칭찬을 받았다. 이런 수업이라면 고등학교 때까지 문제없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즐거운 시간은 딱 한 시간뿐이었고 나는 이내 열등생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더 이상의 동그라미는 없었다. 우리는 유클리드적이고 기하학적인 원을 배우기 시작했고 거기에는 원주율이라는 불변의 수와 각종 공식들만이 있었다. 다 같이 다 같은 것을 배웠는데도 나중에 어떤 아이는 서울대에 갔고 더러는 지방대에 갔고 나 같은 아이는 대학 대신 군대에 갔고 또 어떤 아이는 자살을 했다.
나는 다시 연습장에 동글뱅이를 그려본다. 어쩐지 그 시절보다 삐뚤빼뚤하고 영 볼품없다. 하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동글뱅이인가 보다. 종이가 허락되는 한 계속 원을 그려나가야겠다. 빙글빙글 동글뱅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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