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얼 기대하며 타인의 일기를 읽을까. 연인의 카카오톡을 검사하는 사람은, 이 인간이 내게 뭔가 숨기는 게 있을 텐데 하는 의심의 해답을 얻고자 한다. 방청소를 하다 우연히 사춘기 아들의 다이어리를 발견한 엄마는, 자식이 혹시나 불량한 친구를 사귀지는 않았나 하는 걱정으로 죄책감을 억누르고 노트를 편다. 즉 사람들이 일기장에서 기대하는 것은 일종의 폭로인 셈이다. 누군가의 겉과 속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를 일기만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은 거의 없다. 요즘엔 일기 대신 핸드폰으로 한 사람의 삶을 검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일기만큼은 아니다. 핸드폰에는 한 인간이 벌인 짓거리들이 가감 없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 짓거리들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알기 어렵다. 일기는 비록 하루의 일들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고 또 그 기록마저 정확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일기 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으며 어떤 자세로 삶을 대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일기에서는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가 아니라 머릿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더 중요하다.
내가 『소로의 일기』를 읽은 이유는 소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과연 소로는 『월든』에서와 마찬가지로 고고하고 고귀한 인물이었을까, 그것도 삶의 모든 순간에서? 자신의 신념을 언제나 100% 확신하고 늘 옳은 일에만 전념했을까? 내 의문은 소로의 진심을 깎아내리거나 남몰래 저지른 소로의 죄악을 찾아내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서른도 안 된 젊은이가 『월든』과 같은 글을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깊은 숲속에서 삼백 년쯤 은거한 백발 성성한 도사나 썼을 법한 글을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이 썼다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썼는지 좀 알아내보고 싶은 마음이 누구라도 들지 않겠는가. 『월든』 자체가 숲속에 홀로 머물던 당시의 일기들을 편집해서 쓴 책이긴 하지만, 나는 이 『소로의 일기』에서 날것에 더 가까운 소로라는 인간을 발견하고 싶었다.
소로의 일상은 잔잔하다. 산책과 멱 감는 데에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새와 나무와 들풀을 관찰하고, 눈밭에서 여우를 뒤쫓거나 개구리를 삼키는 뱀을 괜히 툭툭 건드리고 다닌다. 때로는 큰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친구와 짧은 여행 중에 밥을 지어 먹다가 큰 산불을 낸 적도 있었다. 소로는 산불 그 자체보다 산불에 반응하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불 난 곳에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불을 끄는 데에 시큰둥하다. 그곳에 땅이 있는 사람들은 절박하게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 모두 산불이 나서 마치 ‘신이 난 것처럼’ 행동한다는 걸 소로는 알아챈다. 소로는 산불을 냈다는 죄책감보다 산불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느낀 실망감을 더 자세히 묘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로를 겉과 속이 다른 가식적인 인물이라거나 산불을 내고도 뉘우치지 않는 뻔뻔한 사이코패스 방화범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장 자체가 아닌 문장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에 의지해야 한다.
또한 소로는 깊이 관찰하는 사람이다. 졸참나무와 상수리나무와 밤나무를 잎맥의 모양만 보고서도 구분할 수 있고, 언제 어느 꽃이 피고 지는지, 계절에 따라 강물이 어떤 빛깔로 반짝이는지 세심히 관찰한다. 그러나 그의 관찰은 과학자의 관찰과는 다르다. 하늘에 뜬 붉은색 구름을 보고 구름의 성분과 빛 반사율 따위를 측정할 뿐인 관찰을 과학자의 관찰이라고 한다면, 소로의 그것은 붉은 구름이 마음에 와 닿을 때 발생하는 감정의 작용을 보고한다. 소로는 아름다움 자체보다 아름다움이 암시하는 바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을 반절쯤 읽었을 무렵부터 나는 동네 뒷산으로 매일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소로가 느낀 것들을 느껴보고 싶었다. 아니, 소로가 세상을 바라본 눈을 닮고 싶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산의 이쪽 아래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저쪽으로 하산한다는 코스를 짜서 산책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었다. 우중충하게 서 있는 건 나무고, 바람에 흩날리는 건 낙엽이며, 하늘을 어지러이 배회하는 것은 새였다. 그뿐이었다. 오히려 출발지에서 얼마나 멀리 왔고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더 이상 코스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비로소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슬 모양으로 뻗어 올라간 아까시 나무의 수피, 밤나무에 매달린 밤송이, 큰 나무들 뒤에 매복해 있는 찔레나무가 보였다. 직박구리가 삑삑거리며 조급히 하늘을 갈랐고, 조그만 곤줄박이가 상수리나무 줄기를 쪼아 뭔가를 캐먹고 있었다. 송충이 새끼가 소나무 가지에 뚫어놓은 보금자리로 돌아가려 꿈틀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소로처럼 풍경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눈과 귀와 코가 소로만큼 열려 있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스럽진 않았다. 반드시 그의 행적을 따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대로의 자연 말고도 관찰할 것들은 풍부하다. 멀고 낯선 곳보다 가깝고 낯익은 곳을 여행하는 편이 낫다고 소로는 말했다. 아스팔트로 코팅된 도시가 익숙하다면 도시를 관찰하면 된다. 나는 내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밤 한 시가 지나 점멸신호로 바뀌는 신호등을 응시했고,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들이 겨우내 새순을 얼마나 올렸는지 관찰했다. 깜박이는 것은 어째서 외로워 보이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며, 어째서 입춘이라는 절기를 겨울의 한가운데에 만들어 두었는지 상상해보았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니까.
소로가 마냥 강인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가난은 별로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일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그의 욕망은 실현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했다. 별다른 기록은 없지만, 아마 실패를 맛본 날이면 스스로를 다잡는 말을 쓰며 밤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거나 포기하려들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그 길이 적어도 자신에게는 옳았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실패를 암시하는 그의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오히려 나는 위안을 받았다. 그도 이 세상을 살아간 인간이었음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므로, 나 또한 소로처럼 꿋꿋한 인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을 얻었달까.
그래서 소로는 어떤 사람일까. 잘 모르겠다. 너무 대충 읽어 넘긴 것 같다. 아무래도 월든을 다시 읽어야겠다. 그리고 이 책을 또 한 번 읽어야겠다. 소로가 세상을 본 것처럼, 세심하고 예민하게 말이다.
어제 나는 얼음을 밟으면서 여우 한 마리를 뒤쫓았다. 여우는 가끔씩 웅크리고 앉아 늑대처럼 나를 향해 짖어댔다. (중략) 내 행동에 여우는 인간이 의혹을 느낄 때와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내가 곧장 여우를 쫓아 달릴 때면 자신도 온힘을 다해 달려갔으나 내가 가만히 서 있으면 공포가 가라앉지 않았음에도 낯설면서 기이한 여우의 천성 때문인지 여우도 달리기를 멈추고 웅크리고 앉았다. 내가 계속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면, 천천히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5미터쯤 가서 앉은 다음 짖어대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5미터쯤 가서 앉고는 짖어댔다. 그러면서도 마법에 걸린 듯 달아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다시 뒤를 쫓으려고만 하면 이내 정신을 차리고 뛰기 시작했다. p.221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어떤 기적도 없으므로 성서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pp.236~237
자신에게 맞는 한 가지 고무적인 주제를 찾아내려면 여러 가지를 화제로 써보고, 갖가지 주제를 시도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적당한 비유를 끌어 쓰려 애써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큰길을 통해 진리를 자각할 수 있다. 순간적인 자극이 아무리 시시하고 변변찮을지라도 대상에서 좀 더 나은 연상을 하려고 애써야 한다. 이밖에 자신이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어떤 기회들을 놓치는지 알아야 한다. 마음이 이리저리 오가는 건 공연히 그러는 것이 아니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보라. 마음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든지 그곳에 열중해보라. 갖가지 갈피에서 우주를 탐색해보라. 이 욕구에 맘껏 취해보라. 자연이 떡갈나무 한 그루를 얻기 위해 수천 개의 도토리를 지어내듯이 자신에게 알맞은 한 가지 주제를 찾아내려면 수천 가지 주제를 시도해보아야 한다. p.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