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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hclfdl님의 서재
  • 어머니 내게 오시네
  • 아룬다티 로이
  • 19,800원 (10%1,100)
  • 2026-04-13
  • : 14,980
📖문학동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재 시점의 사회 보다 사람 인격의 입체감에 집중했던 시기가 있을까? 대중의 인격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아마 가장 먼저 돌아보는 사람은 내 주변 사람, 특히 가장 나와 가깝다고 느끼는 나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마냥 안 좋게 보였던 어머니의 어떤 면모에서 시대적, 젠더적, 제도적 억압을 읽을 때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아룬다티 로이의 <<어머니 내게 오시네>>는 그 누구보다 다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법한 인물인 ‘메리 로이’를 딸인 작가의 시점에서 풀어내는 책이다.

메리 로이는 인도의 현대 페미니즘 역사에서 상당히 큰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메리 로이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아무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고향에 미혼모라는 신분으로 무일푼으로 돌아오는데,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여성의 상속권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과 법정 다툼을 벌여 합법적으로 재산을 쟁취하고 선례를 만든다. 또한 기존의 교육과는 궤를 달리하여 보다 평등한 학교를 설립하여 혁신적인 교육가로서의 지역에서 존경받는 위인이기도 하다. 거시적인 업적에서만 대담한 행보가 두드러지는 게 아니라, 평소의 발언과 태도에서도 망설임 없는 저항과 반항적인 면모를 보인다.
공적인 부분에서의 행보와는 다르게 개인으로서, 특히 누군가의 보호자로서는 큰 결함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딸인 저자와 그의 오빠는 항상 어머니의 폭언과 괴롭힘을 견뎠으며 기분에 다라 달라지는 종잡을 수 없는 태도에 긴장하고 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다. 결국 저자는 어머니의 성정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 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지만, 수많은 일을 거친 후 결국 어머니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겸허히 책을 써내린다.

아룬다티 로이는 저항의 글을 쓰는 작가들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활동가적 행보를 보이는 인물이다. 작중에서도 환경 단체와의 오랜 협동, 법정의 권위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구금되거나 이슬람 혐오 세력에 대항하는 저항군에 합류해 경험한 잠입 작전과 같은 흔히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떤 부분에 들어서면 책의 주제로 보이던 어머니가 거의 언급이 되지 않는 구간에 당도하는데, 결국 책의 정체성이 특정 인물에 관한 회고가 아닌 저자의 자서전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점점 나아갈수록 저자를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계기이자 근원이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가 아름드리 가지를 뻗어도 뿌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저자는 자신의 수많은 선택을 가능케 한 뿌리인 어머니를 탐구한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을 회고할 때는 고인의 행동을 어떻게든 좋게 해석하는 오류에 빠질 때가 많다. 하지만 아룬다티 로이는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어머니의 지독한 점을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습관적으로 자식들에게 평생에 트라우마가 될법한 폭언을 하고, 까내리고, 남들 앞에서 구박을 주는가 하면 자식들이 아닌 교원들에게조차 폭군으로서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머니를 몇 번 만나보지 못한 사람을 오랜만에 재회했을 때 가장 먼저 들은 말이 “너의 그 미친 어머니는 잘 계시나?”일 정도다. 이 정도로 개인을 지독하게 묘사한다면 되려 저자의 증오가 묻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다.

내가 엄마를 떠난 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엄마 곁에 머물렀다면 그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_🔖15p

그러나 아룬다티 로이는 항상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감추지 않는다. 되려 사랑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담담하고 객관적인 서술을 고집하려는 그 태도 때문에 독자는 메리 로이라는 개인을, 또한 메리 로이가 대표하는 ‘입체적인 개인’의 표상을 해석하기 쉬워진다.

아룬다티 로이는 분명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력에 대해 말하지만, 그 영향력이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 해석되지는 않음을 감추지 않는다. 책의 표지에도 나와 있으며 저자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인 <<작은 것들의 신>>에서도 나오는 상징인 ‘차가운 나방’이 대표적인 예시인데, 이 ‘차가운 나방’은 저자가 평생 어떤 안정된 조건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불안함을 상징한다. 실제로 저자는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기반에 정착할 기회가 주어지면 불안함을 느끼고는 제 발로 그곳에서 벗어나 다시 불안한 지반을 향한다.
하지만 이 불안함과 그 불안함이 유발하는 죄책감은 저자의 파란만장한 경험과 억압에 저항하는 행보, 그리고 약자들에게 향하는 연대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메리 로이의 영향력 또한 메리 로이의 본인과 닮은 입체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메리 로이의 불같은 성격은 즉각적이고 거샌 저항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자식들과 부하 직원들을 향한 성질로도 발현된다. 강력한 카리스마는 학교를 자신의 철학에 기반하여 균일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하 직원에게 부채를 부치게 하는 권위적인 모습으로도 발현된다. ‘양날의 검’이 사람이 된다면 메리 로이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메리 로이라는 인물과 그의 영향을 받은 아룬다티 로이를 조명하면서, 이 두 여성과 긴밀하게 엮인 인도의 현대사 또한 내밀하게 묘사한다는 부분이다. 메리 로이가 자신의 아버지의 옛 별장에 숨어 살다가 어머니와 오빠에게 쫓겨날 뻔했던 일도, 아룬다티 로이가 감옥에 들어가야 했던 일도 인도 현대사의 면모를 알지 못하면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인물을 보다 자세하게 묘사하기 위해 카스트 제도의 폐해나 성차별은 물론이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 종교 탄압과 학살을 말해야 한다. 이 두 사람의 생애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이런 정치적 상황을 필히 설명해야 함을 인지시키며 개인의 행보가 어떤 식으로 휘둘리는지 묘사하며 저항의 필요성을 노래한다.

사회적으로는 위대한 인물이나 개인적으로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어머니,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어머니의 영향력을 곱씹는 딸, 이 두 인물에 얽힌 인도의 현대사라는 소재만 보면 책 자체가 무겁거나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이나 논픽션을 읽은 독자라면 알겠지만 저자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명징하게 풀어내는 문체가 이런 어려움을 완화하고 감당하기 좋을 정도의 묵직함을 자연스럽게 조정한다. 문장에서 묻어나는 인도의 자연스러운 이국적인 문화와 풍경 또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메리 로이 같은 여러 측면에서 대단한 개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타인과 세상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아 휘둘린다. 다양한 방향에서 뻗어오는 물살에서 떠도는 정처 없는 개인은 그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또한 그 영향을 어떤 식으로 긍정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 어떤 지표가 되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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