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무허가 건물에 살았다. 유년의 나의 집은 가난하고 불편했다. 무엇보다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오늘 본 <반달>속 송이처럼 내게도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유년의 기억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하고 여린 나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보다 더 작게 움츠리고 있던 어른들이 있다.
작가 김소희 자전적 이야기 <반달>은 표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책을 덮을 무렵 표지 속 소녀의 눈빛이 무얼 말하는지 알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져버린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어린 소녀의 눈빛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주인공 ‘송이’는 같은 편이 되어주지 못한 친구에게 미안했고 나의 고통의 깊이만큼이나 친구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며 자라난다.
<반달>에 나오는 어른들은 아이보다 더 아이 같다. 미안함을 정면으로 대면하지 못하는 아빠와 사랑 때문에 마을금고를 터는 브래드 피드 그리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선생님까지 조금씩 모자라고 어딘가 비겁하다.
섬세한 그림체와 담담하고 솔직한 문체가 온기 없는 종이 위에 그려진 <반달>을 따뜻하게 느끼게 해준다. 한 사람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빼고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반달>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소녀 ‘송이’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누군가를 향한 죄책감은 바로 뒤늦게 건네는 위로의 또 다른 모습임을 말해준다. 나는 기억을 통해 삶의 결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유년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미안함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반달이라는 따뜻한 상징을 통해 그래도 살아서 기억한다는 작가의 의지와 희망을 노래하며 끝을 맺는다.
<반달>을 통해 기억하는 사람의 의지와 바람이 쓸쓸했던 사람들의 등을 쓸어주는 위로의 힘이 있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무허가 건물에 살던 어린 나와 반달 뒤에서 웃고 있을 송이가 만났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만약 그들이 깊은 불행의 지하실에서 컵라면을 나눠 먹으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마주잡은 두 손의 온기처럼 언젠가 따뜻한 달빛이 두 사람을 감싸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