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와 나의 삶이, 오랫동안 씌어지는 인간에 관한 기록이라고 믿는다. 아버지와 나의 몸이 세상의 페이지에 밤의 잉크로 찍어놓은 활자라고 믿는다. 이 이야기는 분명 사랑을 예시하기 위하여 시작되었을 것이다.
햇볕 속에 반짝 비쳤다가 사라지는 먼지처럼, 이번 생에서 우리가 만든 기적은 내가 당신을 ‘아버지‘하고 불렀을 때, 추레한 바지를 끌고 들에 가던 당신이 성가시다는 듯 짓궂게 찡그리며 나를 돌아보았을 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의 모든 기억이 찢어져 흩날리는 페이지처럼 아플 수 있겠는가. 전사를 잃어버린 이야기처럼 내 삶의 알리바이를 그저 그리움으로 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