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은 여러 경제학서나 사회학서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책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 <강남좌파>와 <보보스>에서 <유한계급론>에 대해 인용, 언급한 것을 보았다. 둘 다 한국, 미국의 신흥 좌파적 유한계급에 대한 분석을 한 책인데, 그 책들을 읽고 더욱 더 <유한계급론>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기존에 나온 <유한계급론>의 번역상 문제를 꼬집은 독자들이 많아, 읽기 주저하던 중 이렇게 현대지성에서 <유한계급론>을 새로 번역했다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중점은 유한계급이 과시적 소비와 경쟁적 소비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계급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피력한다.
태곳적 시절부터 야만 시절, 유사 평화 시절, 그리고 현대 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유한계급의 생성과 유한계급의 계급적 특성, 그들이 선호하는 직종, 소비를 역사적 순차적 순서에 따라 총망라한다.
인류 초창기 야만시절에는 유한계급과 노동계급이 성별적 특성으로 분화되었다. 유한계급은 생성적인 것에 대한 다스림에 종사하였고(군사, 정치, 종교, 사냥 등), 노동계급은 비생성적인 것을 다루는 것에 대해 종사하였는데 이것은 순전히 성별적인 차이에 의해 분업화된 것이다. 남자는 '천한 생산노동' '먹고 살기 위한 노동'으로부터 면제받아 군사, 정치, 종교, 사냥 등 목적성이 있는 것에 종사하였고, 여성은 '열등한 생산노동'에 종사하여 그들을 먹여살리는 하부구조 계급을 도맡아했다.
유사 평화 시절에 이르러 이것은 가부장적 특성으로 나타난다. 성별적 분업은 그대로 이어지지만, 생산성이 향상됨에 따라 유한계급(남성)의 노예인 여성들이 일차적 여가와 소비를 누릴 수 있는 남성으로부터 그들의 여가와 소비에 대한 과시를 위해 대리적 여가와 소비를 누리도록 하였다. 여성들은 그들의 주인인 남성들의 경제적 계급의 과시를 위해 (비천한 여성 또한 그들의 주인의 물질적 혜택에 힘입어) 대리적 여가와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남성의 몸종, 하인들에게도 대리적 여가와 소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과 하인에 대한 계급 상승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인인 남성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산업사회에 이르러 생산성이 더욱 향상됨에 따라 이러한 여성의 대리적 여가와 소비는 유한계급의 아내 뿐만이 아니라, 중산 계급에게까지 퍼지게 되었다. 여성은 오로지 남성(주인)의 경제적 풍족함과 경제적 계급을 과시하기 위해 대리적 여가와 소비를 할 수 있는 대상이었으며, 그것을 과시할 수록 주인의 경제적 풍족성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여성의 매력은 초기 야만 시절의 건강하고 건장한 것에서 벗어나, 가느다란 허리, 전족 등을 통해 생산에 종사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고 가련해야만 매력이라는 것으로 변해갔다. 그런 가련함은 주인의 경제적 풍족함을 통해 생산노동에 종사할 수 없을 정도로 특권계층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매력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한계급의 과시적 여가와 소비, 또 그들의 종인 여성과 하인의 대리적인 과시적 여가와 소비는 인간에게 포기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동기이자 특성이다.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 그 때 그 때 생존하기 위해 금전을 취득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경쟁하기 위해, 남보다 더 높은 계급이 되기 위해, 남보다 더 우월한 경제적 계급에 속하기 위해 금전을 취득하고자 (더욱더 전투, 공격적으로) 노력하곤 한다.
그런 금전적 계급, 유한계급의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간혹 생필품마저 포기하고 과시적 소비를 일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그 당시 주류경제학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겠지만, 요즘의 세상을 보면 그런 해석이 굉장히 일리가 있고 시대를 앞서간, 통찰력있는 해석으로 여겨진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그 뒤 유한계급이 소비하는 품목에 대해 차근차근 짚고는-미술, 가구, 심지어 개, 고양이, 말조차-그런 모든 유한계급의 소비이력이 실용성, 필요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경제적 계급을 과시하기 위한 것을 보여주는 (실용성 없는)과시적 경쟁적 소비라고 일깨운다.
이러한 해석들은 유한계급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조롱이 들어있는 것이지만, 소스타인 베블런은 내내 '어떠한 도덕적 비판이나 비난 없이 단지 경제적으로 그들을 해석할 뿐이라고' '일견 다르게 오해할 수 있지만 이것은 오로지 경제적으로 해석할 때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을 쭉 읽고 있으면 그런 유한계급에 대한 해석이 '중의적'이고 '어떤 비난도 없는 것'이라고 읽어지지는 않는다.
현대지성에서 나온 <유한계급론>의 장점은, 소스타인 베블런의 문장 중에 다소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거나 한번에 어떤 의미인지 잘 읽혀지지 않는 어려운 문장을 옮긴이가 괄호로 친절하게 예시, 설몀을 들어가며 해석을 했다는 것이다. 이게 뭔 의미인가, 하고 두 번 세 번 읽어야 어렴풋히 이해가 가는 문장을, 옮긴이의 해석을 통해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하고 빠르게 이해하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딱히 그 문장에 어울리지 않거나,
협소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해석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통해 좀 더 쉽게 유한계급론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가격 또한 합리적이다. 기존의 <유한계급론>이 이보다 더 비싼 가격이라 엄두를 못냈는데, 정가 13800원이라서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학자가 뽑은 사회학서 순위에 2위가 <유한계급론>인 것을 보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32위이다) 반드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위대한 고전을 이번 기회에 읽어봐서 좋았다. 사회학이나 경제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꼭 읽어봐야 하는 필독서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