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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이 은은한 방
  • 하루 필사 : 헤르만 헤세 편
  • 헤르만 헤세
  • 15,400원 (30%220)
  • 2025-08-30
  • : 210

필사를 해본지 꽤 오래 되었다. 10수년전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성서를 필사해본 적이 있다.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한페이지씩 단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것이었다. 내가 맡은 부분이 극히 적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때는 짧은 숙제를 해치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가끔 동화 필사를 해보았다. 글쓰기를 배우는 차원에서.

[하루필사]를 받았다. 책 제목이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단단해지는 문장들[하루필사]" 다. 내가 독일 작가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데미안·싯다르타"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필사하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세 소설 모두 고등학생일때 읽었던 소설이다. 그 중 데미안은 여러번 읽었다. 책을 받고 나서 너무 좋아서 한동안 가슴에 안고 팔짝팔짝 뛰었다. 그렇게 혼자서 기쁨을 한껏 만끽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쯤 읽은 것 같다. 한참 나도 엄청 힘든 시절이라 소설 속 한스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만 내 처지에 비해 너무나 배부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아서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에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는지 모른다. 그때 우리집은 가세가 갑자기 기울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게 될지도 모르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고민이었다.

"어린 학생들의 눈앞에 낯설고 울퉁불퉁하고 난해한 모습으로 불쑥 솟아난 히브리어가 변덕스럽게 가지를 내뻗어 학생들의 주의를 끌고, 기묘한 색깔로 변하거나 향기로운 꽃을 피워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그 나무의 가지와 구멍과 뿌리에는 수천 년 된 소름 끼치는 정령 혹은 친근한 정령들이 살고 있었다."-p40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문장이다. 히브리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새로운 언어를 생소하면서도 아름답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이런 문장으로 표현 했다. 그 당시 나는 수업시간에 끝없이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싯다르타> 모두 세상의 틀을 깨부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특히 <데미안>이 더 그랬다.

"사랑은 애원해도 안 되고 요구해서도 안됩니다."부인이 말했다. "사랑은 그 안에 확신하는 힘이 있어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려가지 않고 끌어당기게 되죠.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내게 이끌리고 있어요."-p168

[하루 필사]에 세 소설에서 따온 좋은 문장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루 한 page씩 써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장도 채우지 않았다. 내 악필로 이 필사노트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대신 잠자리 들기전에 여러번 소리내어 낭독해 보았다. 결국 필사는 하나도 해보지 않고 고이 간직할 것 같다.

헤르만 헤세의 좋은 문장을 읽으면서 엄청 행복했다. 더불어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단단해지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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