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단편들에서 휴머노이드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설정이 나오는데 실제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그 예로 <인간의 대리인>이라는 첫 번째 단편에서는 인간 변호사를 대체한 AI 변호사가 나오고 판사는 이미 AI로 대체된 지 오래라는 설정에서 출발하고 결국 인공지능이 변호에서 승소를 이끌어낸다. 소설 속 AI 판사는 감정을 제외하고 오로지 사실과 근거로만 사건을 판결한다. 이게 좋을 걸까 나쁜 걸까? 어떻게 보면 사실을 판단하는데 감정적인 부분은 제외되기 때문에 훨씬 정당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인간 세상살이의 그 미묘한 감정의 느낌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초월하여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흔히 우리가 기계의 성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결국에는 전체적인 부분에서 봤을 때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아닐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표지작인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였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토탈 이모션'이라는 기업은 AI를 통해 감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집된 개인의 다양한 데이터에 따라 AI가 문제메시지를 자동으로 작성하고 전송해 주는 서비스인 ‘토탈 텍스트'부터 자동화 ARS인 ‘토탈 ARS’ 그리고 사용자들의 취향을 분석해 이야기를 생성하는 소설 앱 ‘토탈 픽션' 등 다양한 분야에 AI 자동화 서비스가 도입되었고 AI에 지배당해 모든 것이 분석되고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감정의 필요성이 사라져 결국 나중에는 감정까지 사고팔게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실 소설 상의 설정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다. 지금도 충분히 우리는 AI가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또 그것을 아무런 불편함 없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삶은 양적으로 더 풍부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과연 이것이 질적으로까지 풍부한 삶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AI 추천만 보더라도 고민의 시간을 줄여주었지만 어떻게 보면 AI가 분석한 나만의 취향에 따라서 우리에게 정해진 선택지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가 받아볼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들고 그 안에서만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가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소모가 줄어드는 것조차 누군가는 효율성의 증대라며 환영할 수도 있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감정을 보고 느끼는 것이 개인의 성장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일 텐데 그런 것들이 사라지면 결국 내 삶의 바운더리에서 나아가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