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역사를 서사 동시로 풀어낸 동시집, <4시에 멈춘 풀꽃시계>
특별한 동시집 한 권을 소개할게요. 바로 윤삼현 시인의 서사 동시랍니다. 다양한 동시집을 읽어본 편인데, 서사 동시로만 시집 한 권을 꽉 채운 동시는 처음이었어요. 그것도 주제가 하나로 귀결된답니다. 시인은 머릿말에서 4.19 서사 동시를 쓰게 된 계기는 오롯이 형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어요. 네 발의 총탄을 맞고 죽게 된 형이 얼마나 사무치게 보고 싶었을까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사회 시간에 '한국사'를 배우고 있어요. 역사를 배우는 방법은 다양하지요. 학교 교과서로 접할 수 있지만 내용이 너무 축약되고, 정보도 한정적인 아쉬움이 있어요. 소설이나 영화로 접하게 되면, 오히려 그 시대의 역사를 더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강 소설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마음이 먹먹해지며 한동안 그 시간에 저도 다녀온 것 처럼 마음이 아팠어요. 이번에 이 시집, 윤삼현의 <4시에 멈춘 풀꽃시계>를 읽으며, 동시로도 역사를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꽃 피고 새 노래하는 사월이 오면
더욱 그리워지는 형.
그날 형을 데려간 사월의 꽃바람은
가슴을 긋는 아픔이다.
그날 물큰한 아픔은 붉은 노을처럼
강렬한 기억으로 머물고 있다.
그러나 형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고귀한 피를 흘려
자유민주주의의 새 하늘을
활짝 열어놓은 형.
형의 용기있는 삶과 생생한 기억이
시가 되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

서사 동시 몇 편을 소개해요.
풀꽃시계
빈 들판을 키 작은 들풀이 채우고
솔밭 새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를 깨웠다.
소년은 들로 나가 염소 풀을 뜯긴다
내년이면 아기 염소 같은 일학년 동생들이 생긴다
1960년을 떠올리면 희망이 물살친다
툭 터진 들판을 향해 손나팔을 하고 외친다
새 해야 어서 와라!
문득 서울에서 공부하는 형이 그립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공부하는 형은 고교 2학년
진학반이 눈앞이라 공부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지난 방학 때 내려온 형이랑 봇둑에서
토끼풀 풀꽃시계 두 개를 만들어 손목에 동여맸다
-자유당이 떡 주무르듯 제 맘대로 정치를 하고 있지만
반드시 자유 정의가 꽃피는 봄날이 꼭 올 거야
이 풀꽃시계는 그 날을 불러내는 민주의 시계란다
마음 속 째깍째깍 돌아가는 풀꽃시계
풀꽃시계가 꿈틀 살아 반짝거렸다.
윤삼현, <4시에 멈춘 풀꽃시계>, pp.20~21
서사시 속 주인공과 형은 나이차가 꽤 납니다. 큰 형이 얼마나 위대하게 보였을까요? 작은 동생이 얼마나 귀여웠을까요? 자주 못 보는 형이라 형과 함께한 추억 하나하나가 시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형과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시 곳곳에 뭍어나요.

붉게 물든 풀꽃시계
서대문 국회의장 자택 앞
오후 3시를 넘기자 대학생 천 여명이 달려와 합세했다
선두에 선 형과 흥분한 학생들이 저지선을 밀어붙였다
- 바리게이트가 무너졌다!
-와!
시위대가 황소처럼 들이닥쳤다
의장 자택에 5미터까지 다가섰다
시위대는 의장 집을 겹겹이 에워쌌다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휘둘렀다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경찰이 오후 4시 경
일제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 탕! 탕탕탕!
시위대 맨 앞의 형이 쿡 쓰러졌다
네 발의 총탄이 박힌 형,
아까운 꽃잎이 고개를 떨구었다
붉은 피가 아스팔트를 물들였다
붉은 피는 가슴에 품은 형의 풀꽃시계를 물들였다
형의 민주의 시계바늘이 뚝 멈추었다.
윤삼현, <4시에 멈춘 풀꽃시계>, pp.104~105
시를 읽으며, 마음이 계속 아팠다. 시인은 괜찮았을까? 1960년대, 시인은 초등학생이었다. 책에 수록된 44편의 서사시를 통해 형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조금은 녹아졌기를 바라본다.
윤삼형의 서사 동시,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해요!
아침 마중에서 나온 청소년 시집으로, 역사를 배우는 중고등학생이 읽으면 좋아요.
초등학생이 이 책을 읽고, 역사에서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주주의 정신을 잊지 않을 어른이 읽어보아도 좋겠어요.
보통 동시집은 짧은 시간에 금새 읽게 되지요. 하지만 이 동시집은 읽다가 자꾸 멈추게 되더라고요. 마음이 아팠거든요. 이런 특별한 시집을 내준 저자와 시의 주인공이자, 우리나라를 위해 애써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