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수지는 꿩처럼 아름다운 닭 털을 무참하게 뜯어내고 있는 오목이 발밑에 무릎을 꿇고 구원을 청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런 충동은 머리로 왔다기보다는 목줄기를 타고 온 것처럼 목구멍이 괴롭게 메었다. 수지는 그 고통을 신음하는 것을 참기 위해 계속해서 자기 목을 두 손으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수지는 자신이 당장 편안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목이 발밑에 무릎을 꿇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또한 알고 있었다. 오목이의 발밑에 무릎을 꺾는다는 건 곧 자신의 삶의 축을 꺾는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풍요하고 품위 있게 회전시켜온 축을 아무런 대책 없이 꺾어버리는 짓을 저지를 만큼 무분별하지가 못했다.
수지는 마음속으로나마 처음으로 속죄를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강렬하게 원하고 있는 게 뭔지를 깨달았다. 그건 참회였다. 그녀가 두려워한 것도 다름 아닌 참회의 기회였다. 속죄했으면 그만이야. 오목이에게 참회함으로써 오목이가 얻을 건 아무것도 없잖아.
만일 사전에 오목이에게 나의 죄의 대가로 그들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속죄와 입으로 죄를 고백하는 참회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를 물을 수 있었다 해도 오목이는 서슴지 않고 나의 속죄를 택했을 거야. 오목이는 바보가 아니니까.
너는 오목이가 아냐, 너는 수인이야. 내 동생 수인이야. 내가 너를 처음에 모른 척한 것은 일곱 살 적의 내 잘못을 덮어두기 위해서였어. 그 잘못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너를 아는 척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 실상 일곱 살 적인 그 일은 죄랄 것도 없지 않니. 일곱 살은 죄를 저지르기엔 너무 이른 나이야. 그건 그냥 잘못이었고, 그 미친 전쟁의 악랄한 장난질이었어. 이제야 알겠어. 내가 참으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할 것은 일곱 살 적의 잘못이 아니라 그 후 너를 수없이 모른 척한 죄라는 것을. 잘못을 죄로 덮어두려 한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오목이가 천근의 무게처럼 힘겹게 건네준 건 은 표주박이었다. 은행알 만하고 청홍의 칠보 무늬가 아직도 영롱한 은 노리개였다. 수지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공구해서 풀썩 바닥에 무릎을 꺾고 그것을 받았다. 어쩌면 수지가 지금 꺾은 것은 무릎이 아니라 이기로만 일관해온 그녀의 삶의 축이었다. 마침내 그것을 꺾으니 한없이 겸허하고 편안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슬픔이 밀려왔다.
"오목아, 아니 수인아, 넌 오목이가 아니라 수인이야. 내 동생 수인이야. 내가 버린 수인이야. 내가 너를 몇 번이나 버린 줄 아니……?"
이렇게 목멘 소리로 시작해서 길고 긴 참회를 끝냈을 때 수인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러나 수지는 용서받은 것을 믿었다. 수인의 죽은 얼굴엔 남을 용서한 자만의 무한한 평화가 깃들어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