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줍은 차마니』
있죠, 여기 이상한 작가가 있어요. “어린이 여러분들이 내 책을 라면 받침으로 쓰더라도 잘 읽어만 줬다면 상관없어요.” 라고 말 하는 작가 말이에요.
오호, 그럼 일단 라면 받침으로 쓰기 적당한지 볼까요? 일단 두께는 합격! 너무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아 딱 알맞아요. 그런데 막상 라면 받침으로 쓰려니…책이 너무 예쁜 것 같아 마음에 걸리네요. 특히 이 여자 아이 그림말이에요. 두 팔을 하늘로 쫙 뻗고 무척 환하게 웃고 있잖아요. 풍선처럼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아요. 아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 위로 뜨거운 냄비를 올릴 순 없죠. 그럼 한 번 뒤집어 볼까요? 뒷면이라면 뭐, 괜찮지 않겠어요?
어엇, 그런데 이것 참 야단났네요. 뒷면에 있는 어린이들도 만만치 않게 어여쁘지 뭐예요. 짓궂은 표정의 아이도, 해맑은 표정의 아이도, 도무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도…. 다 어디서 본 것만 같고, 어디선가 마주친 것 같고, 말을 걸면 씩 웃으며 대답해줄 것 같단 말이죠. 에잇. 이걸 어떻게 냄비 받침대로 쓰겠어요. 투덜거리며 책을 한 번 펼쳐 봅니다. 아참, 참. 그러고 보니 ‘잘 읽어만 줬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었잖아요. 그럼 먼저 읽어봐야겠죠?
이 책엔 네 편의 단편 동화가 실려 있어요. ⌜곱슬곱슬, 곱슬 사랑⌟, ⌜오늘도 수줍은 차마니⌟, ⌜지오가 웃던 순간에⌟, ⌜피어나, 화영⌟이죠. 어린이에 대한 애정 넘치는 마음이 곳곳에 담겨 있는 사랑스러운 단편 동화들이랍니다.
네 편의 동화 속에 나오는 아이들은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 애들은 서툴러 실수도 하고, 무심코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때때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만큼 잘 해 내지 못 해 속상해하기도 하지요.
‘곱슬곱슬, 악성 곱슬머리를 가진 열세 살’ 구오슬, 힘 좋기로 유명해 오해를 사곤 하지만 누가 뭐래도 ‘평화주의자’인 차마니, ‘학교에서 육 년 동안 쌓아 올린 명성을 똥쟁이라는 오명으로 똥칠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루아, ‘잘 못하면 좋아하는 것도 안 되냐?’고 묻는 화영이.
한 명 한 명 이름을 가만히 불러 봅니다. 다정한 빛깔로 그려진 이 아이들은 한여름 내리쬐는 햇빛처럼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납니다. 덕분에 읽는 내내 마음이 아득히 환해져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되네요. 이런. 아무래도 이 책은 라면 받침으로 쓰긴 아깝겠어요.
마음이 속상할 때. 기분이 울적할 때,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을 때. 그 때를 위해 책장에 자리를 마련해 두어야겠어요.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말이죠. 언제라도 이 책을 펼쳐 보면 더없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때처럼 마음이 보송보송, 말랑말랑해질 거예요.
아 그리고 있죠, 사실은 아까 전하지 않은 작가의 말이 하나 더 있어요.
“여러분이 많이 웃고 가끔만 힘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재미난 것들로 시간을 꽉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따분하고 지치는 일들은 우리 어른들이 어떻게든 해결해 볼 테니까, 여러분은 부디 매일 신나기를 바랍니다.”
아, 이토록 든든한 약속이라니요. 이렇게나 기꺼운 환대라니요.
시무룩한 오늘을 보낸 여러분, 속상해서 눈물 찔끔 했던 여러분, 토닥토닥 위로 받고 싶었던 여러분. 속는 셈 치고 『오늘도 수줍은 차마니』를 한 번 펼쳐보세요. 우리의 마음을 톡톡 두드리는 건 사실 별 게 아니잖아요. 너도 그런 적 있었어? 나도 그런 적 있었어. 끄덕끄덕 함께 고개를 끄덕여주는 시간 덕분에 우리는 또 씩씩하게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