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잊고 있던 엽서 한 장을 꺼내어 보았습니다. 꽃을 품은 고래가 그려진, 환하게 아름다운 엽서였지요. 그 날 엽서 위로 어룽거리던 햇빛, 낮게 울리던 친구의 웃음소리, 간간이 불어오던 따뜻한 봄바람 같은 것들이 잠깐 떠올랐습니다. 천천히 오래 걸었던 바닷가, 향이 좋던 커피, 기분 좋게 일렁이던 어떤 감각들도요.
그 순간들이 무척 그리웠나 봅니다. 김민철 작가의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를 읽고 한참 멍하니 있었던 걸 보면요. 푸르른 책의 표지를 오래 들여다보다가 뒤적뒤적 엽서를 찾아보기 시작한 걸 보면요.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을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 김민철,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중.
이 책은 ‘문득 슬픔에 허덕이는 당신에게’, ‘제 몫의 희망을 챙기기로 한’ 작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아주 다정한 기록입니다.
이름 있는 당신, 혹은 이름 없는 당신에게 보내는 이 살가운 편지들은 이렇게나 단정하게 우리 앞에 놓여 있네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들이 무심코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요. 특별할 거 하나 없는 풍경 사진들을 찬찬히 더듬어 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예상치 못했던 전염병의 창궐로 모든 일상적인 것들이 마비되어버린 요즈음, 쉽사리 집 밖으로 나가지 못 하는 요즈음, 베란다에 작은 의자를 하나 가져다 두고 종종 이 책을 들춰 봅니다. 누군가가 정성껏 기록한 반짝이는 순간들을 천천히 오래 음미하기 위해서 말이죠.
창밖의 풍경은 시시각각 바뀝니다. 햇빛이 찬란했다 사그라지고, 어제는 피지 않았던 꽃이 오늘은 피어 있고, 하늘의 빛깔이 서서히 달라집니다. 이 책은 그 풍경과 참 잘 어우러집니다. 그냥 지나치면 별 것 아니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어떤 아름다운 것들과 닮아 있거든요.
이 책을 읽으며 오래 전 찍어 놓았던 필름 사진을 발견한 것처럼 가만히 미소 짓게 되는 이유는 잊고 있던 그리운 순간들이 언뜻언뜻 희미하게 떠오르기 때문이겠죠.
알 수 없는 울적함에 가라앉고 있는 당신, 절박한 순간들 때문에 발작처럼 서러워지는 당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애달프게 그리워하고 있는 당신. 모르는 얼굴로 지나쳐도 불쑥 안부를 묻고 싶은 많은 당신들에게 이 책이 주는 위안을 전하고 싶네요.


우리, 다시 여행을 하는 거야. 시간 속에서, 기억 속에서. 이미 네게 기억이 많잖아.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잖아. - 김민철,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중.
‣ 미디어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