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카르캥의 책 글 쓰는 딸들을 읽었다. 책은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들의 어머니를 비춘다. <글 쓰는 딸들>은 소설적 형식으로 쓰인, 마치 읽기 쉽게 쓰인 논문 같았다. 실제로 책에 달린 무수한 각주들을 보면 이 책이 작가들의 수많은 발자취를 분석하고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들의 생전 인터뷰, 그들에 대한 논문, 그들의 책 등. 그렇게 분석된 사실로 이루어진 소설은 읽기는 쉬울지언정 무겁다.
세 여성 작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족쇄와 같은 가정,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글쓰기'로의 도피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 불행의 도피는 성공적이었고, 그들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로서 자리매김했다. 불행이 작가의 영감과 양식이 되어 글로 태어나는 행위는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P. 50, 51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마리 D.
" (생략) 나는 그때 여섯 살이었고, 그 아이는 열한 살 반으로 아직 사춘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음경이 아직은 몰랑했다. 그는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었다. 내 손을 끌어 음경을 붙잡게 한 뒤 자기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우리의 두 손이 그의 음경을 주물렀다. 점점 더 세게 주물렀다. 잠시 후 그 아이는 움직임을 멈추고 손을 뗐다. 그때 내 손안에 잡혀 있던 것의 형상. 그 미지근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눈을 감고 아직은 가닿을 수 없는 쾌감을 향해 올라가던 그 아이의 얼굴, 형 집행을 기다리는 순교자 같았던 그 얼굴 역시 잊히지 않는다"
한참 뒤에 뒤라스는 이 일을 글로 썼다.
...(생략)...
'어쩌면 엄마가 그날 내 모습을 엿본 게 아닐까?' 어린 마르그리트는 생각했다.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마르그리트가 그 장면을 이야기할 때, 어머니의 눈길은 완강했다. 마르그리트의 입술이 굳었다. 어머니가 거칠게 손으로 마르그리트의 입을 막았다. "그 일은 잊어버려. 없었던 일로 쳐.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마." 그 일은 비밀이었다. 마르그리트는 물론 어머니의 말에 복종했다. 그 일을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입을 봉했다.
다만 그 비밀을 글로 썼다.
P. 107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마리 D.
마르그리트는 어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엄마는 피에르 오빠만 사랑하지. 왜 나는 사랑해 주지 않아? 어째서 폴 오빠도 사랑하지 않는 거야?"
어머니가 딸을 펴다 보았다.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눈물 한줄기가 어머니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르그리트는 밖으로 꺼내 보인 자신의 분노를 다시 가슴에 눌러 담았다. 이날의 기억 역시 나중에 글로 쓸 것이다.
이 책은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 세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불행한 가정 환경, 가족 간의 족쇄 같은 사랑, 서로를 파멸시키는 모녀관계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들 또한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프랑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교육 방법, 이에 대한 정신 분석학적 서술은 이 책이 문학과 인문학 그 사이에 위치함을 보여준다.
<글 쓰는 딸들>은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아이킬드 마이 마더>, <마미>, <단지 세상의 끝>을 인상 깊게 본 사람이나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인간이기에 우리는 나를 힘들게 만드는 그 존재에게 증오와 불행,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사랑과 애정을 느낀다. 무엇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감정으로 이루어진 '어머니'는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는 없는, 이해해 보지만 이해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내겐 어머니라는 낙원이 있었어요.
그 낙원은 불행, 사랑, 부당함, 증오, 이 모든 것이었죠."
-마르그리트 뒤라스
가족이라는 족쇄가 만들어낸 불행과 도피처. 우리는, 작가가 아닌 우리는 어떤 도피처로 향할 것인가? 그리고 인생이라는 책의 그 무수히 많은 페이지들에 우리의 불행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