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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i0615님의 서재
  • 밤불의 딸들
  • 야 지야시
  • 14,220원 (10%790)
  • 2021-03-15
  • : 338

삶에서 사소하고 일상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훗날 그 순간이 인생의 분기점임을 나중에서야 깨달을 때가 있다. 결정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탓에 그 날의 '자신'의 결정이 운명적이고, 필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뒤늦은 후회는 시간을 되돌리지 못하니 우리는 그저 그게 옳은 결정이었겠거니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에게 내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는 이들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결정에서 - 하물며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뒤바뀔 결정임을 아는 상황 속에서도 -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목소리를 잃고 다른 이에게 인생을 맡긴다. 그건 그들이 무능력하고 삶에 무기력해서가 아니다.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가 스스로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바꿀 수 없는 태생적인 특징과 삶 속에서 '운명'이 결정되며 사회는 결코 변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바바, 피가 나왔어요.⌟ 그녀가 붉게 물든 야자수 잎을 보여주며 말했다.

바바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가렸다. ⌜나 말고 아는 사람 있니?⌟

⌜없어요.⌟ 에피아가 대답했다.

⌜계속 이대로 있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누가 너한테 이제 여자가 됐는지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해.⌟

에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자리를 뜨려고 돌아섰지만 가슴속에서 뜨거운 석탄처럼 의문이 타올랐다. ⌜왜요?⌟

이윽고 에피아가 물었다.

바바가 에피아의 입에 손을 넣어 혀를 꺼내 날카로운 손톱으로 혀끝을 꼬집었다.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질문을 해, 응?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다시는 말을 못 하게 만들 거야.⌟ 그녀는 에피아의 혀를 놓아주었고, 그날 밤새 에피아는 입속의 피 맛을 느꼈다.

인종이 다양하지 못한 국가에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밤불의 딸들>이 이야기하는 '미국에서 사는 흑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책은 역사와 사회의 격동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저주받은 가족사를 보여준다. 고통은 끊이지 않고 그 다음 세대,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독자에게 그들의 세계를 이해시킨다. 주인공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거나 행복해지지 못하더라도 관객이 수긍할 수 있는 결말을 제시하는 영화와는 다르다.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계속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불행해지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고통받는다. 삶은 더 처절해지고 반복되는 운명의 굴레는 인물들의 삶이 선택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잔혹한 필연임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질문해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삶이었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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