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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웅숭배론
  • 토머스 칼라일
  • 30,400원 (5%960)
  • 2023-03-06
  • : 170

<영웅숭배론>의 목차는 크게 6장으로 나뉘는데 제1장에서는 신으로 나타난 영웅, 제2장은 예언자, 제3장은 시인, 제4장은 성직자, 제5장은 문인, 제6장은 제왕으로 나타난 영웅들이 각각 제시된다.


처음에는 책이 두껍고 외서여서 특유의 번역체로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잔뜩 쫄은 채로 책을 펼쳤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출판사가 한길사인데다가 번역가님께서 번역에 심혈을 기울이셨는지 생각 외로 정말 술술 읽혔다. 게다가 첫 장에 영웅숭배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영웅에 대한 정의 등을 간략히 정리해 줘서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머릿속에 넣은 채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잘 모르는 내용의 삼백 쪽이 넘는 글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칼라일이 워낙 도친자(도덕에 진심인 자)이다 보니 제1장부터 제6장까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발현되는 영웅들의 면모는 다르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영웅의 본질적 특성은 같기에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읽으면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소위 '영웅'으로 쉽게 인식되는 칼을 든 크롬웰과 나폴레옹 못지않게 펜을 든 이들을 영웅으로 추대했기 때문이다. 칼라일은 시인이야말로 모든 시대에 속하는 영웅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고대 언어에서 시인과 예언자를 부르는 호칭이 동일하다. '바테스(Vates)'라는 단어로 시인과 예언자를 동시에 일컫는다. 칼라일은 여전히 두 대상은 근본적으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시인은 세계의 공공연한 신비를 꿰뚫고 있고 만물의 근저에 자리한 것들의 신비로움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시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들, 어쩌면 평생 떠올리지 않을지도 모를 세계를 들여다보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들을 계시해 주는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책 속에서 칼라일이 말하는 영웅은 '도덕성을 갖춘 성실하고 통찰력 있는 진실한 인간'이었다. 그는 '영웅숭배'는 결코 사멸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는데, 사람은 모두 '개인적 판단'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진정한 '영웅'이라 여겨지는 인물을 숭배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여기서 칼라일이 말한 '숭배'는 상급자에 대한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적 '존경'이다. 이러한 자발적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하고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하며 도덕적인 존재여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하고 끝없이 질문하고 의구심을 갖는 존재이기에 정답처럼 보이는 인물을 쫓기 마련이다. 성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이 있다는 의미이기에 불안정한 존재들에게 더없이 안정적이고 확신에 찬 영웅으로 보이게 된다. 그러니 영웅에게 성실성은 필수적인 덕목인 것이다.


'성실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칼라일은 제4장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성실치 않은 인간들을 가지고 공동체를 형성할 수는 없습니다. 수직과 수평을 맞추어 서로 직각이 되게 하지 않고서는 건축물을 세울 수 없습니다! (중략) 모든 사람이 진실하고 선한 곳에서만 진실로 더 선한 인물이 제대로 숭배를 받습니다! (p. 233)


그는 모든 파트에서 첫째도 성실, 둘째도 성실, 셋째도 성실을 매우 강조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의 근원은 성실함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독창성의 가치 역시 새롭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게 아니라 성실하다는 데 있다고 했다. 예술가들의 천재성 역시 성실함으로부터 오는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성실성 못지않게 도덕성도 강조했는데 제3장에서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사람은 설령 손이 없다 하더라도 발리 있으면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도덕성이 없으면 지성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부도덕한 사람이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어떤 사물을 알려면 사람은 먼저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공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과 도덕적으로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모든 고비에서 자기의 이기성을 버리는 정의감, 삶의 모든 고비에서 위험에 처한 진실을 돕기 위해 싸우는 용기가 없다면 그가 어떻게 사물을 알 수 있겠습니까?" (p. 199)


이렇듯 칼라일은 성실함, 통찰력, 도덕성을 강조하며 시대가 숭배해야하는 영웅이란 그러한 자질들을 갖춘 인물이라고 말했다. 각 챕터 별 그가 생각하는 영웅들에 대해 소개하며 어떤 점을 눈여겨봐야 하는지 역설한다. 19세기보다 더욱 복잡하고 불안정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언가를, 누군가를 '숭배'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캐릭터, 예술가, 정치인, 신흥 종교인 등 분야를 막론하고 숭배의 대상이 된다. 19세기 칼라일이 짚어준 10명의 영웅들을 떠올리면서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를 영웅으로 '숭배'하고 있는지, 그리고 누구를 영웅으로 '숭배'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은 문장을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책에 대한 감상은 각자마다 너무 다르고 칼라일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인적 판단'이 모두 다르니 직접 <영웅숭배론>을 펼쳐보기를 추천한다. 생각해 볼 거리가 다양한 책이어서 분명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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