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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홍님의 서재
  • 혐오하는 민주주의
  • 박상훈
  • 16,200원 (10%900)
  • 2023-08-28
  • : 1,362

책의 수명이 어떻게 정해질까?

정말 오래 남는 책이 있는가 하면, 짧게 수명이 끝나버린 책도 있다.

보통 수명이 긴 책들은 현상에 대해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고는 있으나 그것을 최대한 억압하면서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반면 짧은 수명의 책은 당장의 현상에 주목하긴 하지만, 자신이 굳게 믿는 신념을 지나치게 노출해버린 나머지 급박하게 흘러가는 시대 상황에 따라 무의미한 책으로 변질되어버린다.

(시대 상황이 자신의 판단에 맞게 흘러간다면 살아남을 수 있지만, 빗나간다면 생명령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이 그렇다.

사실 나는 후마니타스의 책을 좋아하고, 박상훈 대표를 필두로 그들이 내놓는 정당론 정치서들을 좋아했다. 특히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의 경우는 내 인생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왜 특정 정당이 나의 가치관을 100% 반영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 정당을 지지해야 하는지 그 기준점을 제시해 준 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혐오하는 민주주의》는 서론부터 저자의 지지성향을 숨기지 않고 있다.

딱 봐도 이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지지하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비판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그 사람은 민주당 내부에서 내홍을 일으키고 밖으로 나와 새시대를 만들겠다고 당당하게 천명한 올드 보이였다. 

그리고 저자는 모든 정치인의 "팬덤"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다. 여기에는 윤석열, 이재명, 이준석은 물론이며 이미 지나간 정치인인 박근혜, 문재인까지 포함된다. 그러면서 저자는 마치 이 인물에 대해서는 "팬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야말로 순수한 정치색을 띤 유일한 해답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것을 숨겨놓은 듯이 말하곤 하지만, 문장의 뉘앙스에서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중립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순수 정의선의 예시처럼 등장하는 인물 역시 팬덤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고, 저자 자신도 "학문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채 자꾸 편향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결과. 본인 스스로가 "팬덤 정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중반부터 꽤나 중립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분석을 시도했으나

계속해서 특정 지지성향이 군데군데 튀어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물론, 저자가 특정한 시각과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들은 완벽한 중립을 지키기는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팬덤 민주주의"가 극단적 양분화로 정치를 분열시키는 현 시국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최소한 양극단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도록 중심을 지켜야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을 망각하고 본인 스스로의 시각은 마치 그 팬덤에서 제외된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게다가 그가 지지하는 인물은 결국 그 극단적 양분화의 중심 소용돌이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존재 중 하나였다. 따라서 그 역시 분열의 정치판 속의 핵심 중 하나란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인물임에도, 저자는 마치 이 인물이 양극화된 정치의 중립을 잡아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이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닌다.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우회적으로..


총선이 끝나기 전에는

그래도 이러한 시각이 나름 유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저자가 중립적으로 분석해야 했을 책에서 조차 자신의 입장을 숨김없이 드러낼만큼 자신감을 보였다면, 그것이 현 시국에 하나의 해결점으로 도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이 끝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은 유효한가?

그 당은 국민들에게 완전히 외면당했고, 소나무당 같은 옥중 출마로 소란이 된 정당조차 보전받은 선거비를 보전받지 못한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저자가 신규 팬덤 당원들의 심리를 "정당의 오래된 지역 기반이나 하부 기반을 허물고 싶어하는 존재들"로 규정하였는데, 총선이 지난 후, 이 말은 그야말로 헛웃음이 나오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 지역 기반과 하부 기반의 민심조차 이미 돌아서버렸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러모로 많이 실망스럽다.

특히 좋아하는 출판사, 좋아하는 저자가 이런 식으로 책을 썼다는 것이 참 실망스럽다.

조금 더 중립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본인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좀 숨겼으면 어땠을까.

실제로 "팬덤 정치"는 한국은 물론이며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자기 내부의 자리잡고 있는 숨겨진 팬심, 혹은 그러한 신념들을 솎아내고 썼어야 했다.

만약 그것에 성공했다면, 이 책은 총선이 끝난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를 담은 책으로 남아 계속 읽혔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기 감정과 신념을 조절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이 책은 몇 번을 곱씹어봐도 이걸 계속 읽어야 하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남는 생명력이 짧은 책으로 남게 되었다.

선거 전에 읽었을 때는 그럴듯하게 읽혔는데, 선거 이후 결과를 보고 읽으니 모든 것이 무의미한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저자가 이 책의 방향성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고 본다.

정말 중요한 현상을 왜 이렇게 짧은 전망을 가지고 판단해버렸을까? 

너무나 아쉬운 책이다. 그리고 안타까운 책이다.


그리고 정당론 권위자라는 타이틀을 지닌 저자는

지금 시점에서 자신의 학구적, 지식적 오만에 대해서 되돌아보면서

반성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저자를 더욱 성장시켜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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